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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현 Jul 27. 2022

1-2. 첫 번째 키워드: 개인



개인과 개인 간 법률관계를 다루는 법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相殺以當時償殺).'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相傷以穀償).'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되, 용서를 받으려면 돈 50만 전을 내야 한다(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女子爲婢, 欲自贖者人五十萬).'



        고조선의 8조법은 우리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법입니다. 본래 여덟 개의 조문이었으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건 세 가지뿐이라는군요. 조문 내용은 간단명료합니다. 고조선 사람은 남을 죽이거나 상처 입히지 말아야 하고, 남의 물건을 훔쳐서도 안 됩니다. 모두 공동체 생활을 위해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8조법을 현대식으로 조금만 바꿔볼까요. 다행히 첫 번째 조문은 바꿀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법에 따르더라도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법 제250조 제1항에 따르면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합니다.

        

        8조법의 첫 번째 조항은 개인과 국가 간 법률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형이란 국가가 개인에게 내리는 형사처벌이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국가 간 법률관계를 다루는 법은 공법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C라는 사람이  건축법상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Y 건물을 지었다고 해봅시다. 국가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건축물의 철거, 사용금지 등 그밖에 필요한 조치를 C에게 명할 수 있습니다(건축법 제79조 제1항 참고). 만약 C가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국가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도 있죠(동법 제80조 제1항 참고). 이처럼 공법(公法)에서 다루는 법률관계는 대등하지 않고 수직적입니다. 형법, 행정법, 헌법이 공법의 대표적인 예이고,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같은 절차법도 공법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 조문도 바꿔봅시다.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곡물이 화폐 같은 역할도 겸했으므로, 이 조문은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정도로 바꿀 수 있겠군요. 우리 민법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민법 제750조에 따르면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 간 법률관계를 다루는 법은 사법이라고 합니다. 한자 뜻 그대로 개인(私)에 관한 법(法)입니다.* 예를 들어 A가 B로부터 X 아파트를 산다고 해봅시다. 현실에서는 경제 상황에 따라 집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사이에 갑·을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의 관점에서 둘은 동등한 개인일 뿐입니다.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에 일방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법은 대등하고 수평적인 법률관계를 다룹니다. 민법이 사법의 대표적인 예이며, 상인 간 법률관계를 다루는 상법도 사법에 포함됩니다.



(*삼권분립(입법, 행정, 사법)에서 말하는 사법(司法)과는 다른 용어입니다. 사법(司法)이란 주어진 법을 해석하여 재판하는 국가작용을 말하며, [사법]이라고 읽습니다. 반면 사법(私法)은 [사뻡]이라고 읽습니다.)



        마지막으로 8조법의 세 번째 조항입니다. 세 번째 조항은 조금 까다롭습니다. 현대식으로 재해석하려면 고칠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선 우리 현대사회는 노비 제도를 알지 못합니다. 이 부분은 감옥살이 정도로 바꾸어 볼까요.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감옥을 가야 한다. 용서를 받으려면 돈 50만 전을 내야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감옥에 가야 한다' 부분은 앞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지금 바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조문은 개인과 국가 간 법률관계를 다루고 있으므로 공법입니다. 개인을 감옥에 넣는 것(징역)은 국가가 내리는 형사처벌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 형법에도 비슷한 조문이 있지요. 형법 제329조에 따르면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한편 '용서를 받으려면 돈 50만 전을 내야 한다'는 한 번 더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도범이 피해자에게 물건을 반환하더라도, 더 나아가 합의금을 지급해 용서를 받더라도 국가로부터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법과 공법이 별개 절차라서 그렇습니다. 요컨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는 형사처벌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좀 더 단순하게 '정당한 권리 없이 가져온 물건은 피해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정도로 바꿔 볼까요. 변경된 부분은 이제 사법적 성격을 갖습니다. 한 개인이 자신이 정당한 권리 없이 가져온 물건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리 민법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법률상 원인없이 타인의 재산 또는 노무로 인하여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이익을 반환해야 합니다(민법 제741조).


        민법은 사법의 일종이며, 그래서 개인과 개인 간 법률관계를 다룹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며 개인 간 관계에서 흔하게 접하는 문제들, 예를 들어 물건을 사고파는 일, 돈을 빌려주는 일, 손해를 배상하는 일, 물건의 소유자를 정하는 일, 상속을 정하는 일 등을 민법에서 다룹니다. 모두 개인 간 법률관계에 관한 것이지요. 그래서 민법의 첫 번째 키워드는 "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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