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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현 Jul 27. 2022

3-2. 약속을 어기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1. 약속을 어기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390조(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채무자가 약속을 어기면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390조가 요구하는 요건은 세 가지입니다. ① 채무자가 채무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않고, ②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는데, ③ 채무자가 고의 또는 과실로 채무를 불이행하였을 것, 이렇게 셋입니다. 첫 번째 요건은 앞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두 번째와 세 번째 요건을 알아봅시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손해'가 존재해야 합니다. 학자들은 손해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이론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받아낼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지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겠죠. 실제 교과서에서는 손해의 정의부터, 종류, 인과관계, 범위, 산정법 등 여러 쟁점을 세세히 다룹니다. 하지만 우리는 초학자 신분을 변명 삼아 쉽게 접근해봅시다. 손해란 '그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였을 재산상태와 그 위법행위가 가해진 현재의 재산상태의 차이'입니다(91다33070 참고)*. 위 정의에 입각하여 우리는 (이론적인 내용은 다 건너뛰고) 다양한 사례를 나열식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례, 저 사례를 보면서 '아 손해는 이렇게 구하는 거구나'하고 대략적인 느낌을 가져간다면 목표 달성입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앞서 정리한 ① 약속시간 위반, ② 물건관리 소홀, ③ 품질수준 위반의 틀을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손해를 이처럼 정의하는 견해를 차액설이라고 합니다. 다수설 및 판례의 입장입니다.)



        한편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채무자에게 귀책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귀책사유(歸責事由)란 한자 뜻 그대로, 손해배상책임(責)을 채무자에게 귀속(歸)시킬 수 있는 사유를 말합니다. 채무자는 고의 또는 과실로 채무를 불이행해야 합니다. 고의(故意)란 '위법한 결과를 인식하면서 이를 의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일부러" 약속을 어기는 겁니다. 반면 과실(過失)이란 '주의의무의 위반, 즉 사회생활상 요구되는 주의를 기울였다면 자기 행위로 인한 일정한 결과의 발생을 알 수 있어서 그러한 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 주의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그러한 결과를 발생하게 하는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실수로" 약속을 어기는 것이지요. 아래 단을 나누어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한편 채무자의 귀책사유는 제390조 단서에 규정되어 있는데, 조문상 위치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2. 약속시간 위반과 손해


1) 금전채무의 경우


        돈을 빌리고 갚는 약속에서는 손해의 산정이 쉽습니다. 약속한 시점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지연이자를 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A가 2022. 2. 1. B로부터 1000만 원을 연이율 3%로 빌렸다고 해봅시다. 돈은 1년 뒤에 갚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A가 2023. 1. 31.까지 돈을 갚지 않습니다. B가 A에게 소송을 걸면 얼마나 청구할 수 있을까요? 우선 원금 1000만 원과, 약정이자 30만을 청구할 수 있는 건 당연합니다. 약속이 있으니까요. 여기에 더하여 B는 A에게 늦은 일수만큼 지연이자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제397조(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 ①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한다. 그러나 법령의 제한에 위반하지 아니한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 ②전항의 손해배상에 관하여는 채권자는 손해의 증명을 요하지 아니하고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

제379조(법정이율) 이자있는 채권의 이율은 다른 법률의 규정이나 당사자의 약정이 없으면 연 5분으로 한다.



        돈을 주고받는 약속을 금전채무라고 합니다. 제397조 제2항을 봅시다. 금전채무불이행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채권자는 자신의 손해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① 채무자로부터 얼마 받을 권리가 있는데, ② 채무자가 주지 않았다 딱 이 두 가지만 주장 증명하면 됩니다. 반면 채무자는 자신의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합니다. 쉽게 말해 돈이 없어서 주지 못 했다는 항변은 하지 말란 겁니다. 돈이 갖는 특별한 성질 때문입니다. 돈은 언제나 존재하며 (내 주머니에 없는 게 문제입니다만), 언제나 표시된 화폐가치만큼만 가치를 갖는 대체물입니다. 그래서 금전채무는 불능을 알지 못합니다. 누군가 돈을 주지 않았다면 그저 늦은 것일 뿐입니다.   


        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 산정은 법정이율에 의합니다. 또는 법령 제한에 위반하지 아니한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합니다(제397조 제1항). 우리 사안에도 약정이율이 있기는 합니다만, 약정이율은 3%로 법정이율 5%보다 적습니다(제379조). 이왕 소송하는 거 굳이 낮은 이율로 청구를 할 필요는 없겠죠. 따라서 B는 원금과 약정이자, 그리고 2022. 2. 1.부터 A가 돈을 다 갚는 날까지 5% 지연이자에 대해서도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2009다85342 참고].





2) 금전채무가 아닌 경우


  (1) 물건을 전달을 해야 하는데 늦게 전달한 경우


        이번에도 약속 시간을 위반한 경우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금전채무가 아니라 특정 물건을 전달하는 약속입니다. 사례로 볼까요. A는 2022. 8. 5. B로부터 Z 노트북을 4일간 빌리기로 했습니다. 하루 사용료는 5000원입니다. 그런데 4일이 지난 후에도 A가 B에게 노트북을 돌려주지 않습니다. A는 약속 시간을 어겼습니다.


        손해를 산정하는 방식은 금전채무 때와 비슷합니다. 지체한 일수에 비례하여 손해액을 산정하면 됩니다. 만약 A가 약속 시간을 지켰다면 B는 그 시점 이후 노트북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자신이 직접 사용하여 이익을 얻었텐데 그러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B는 A에게 지체한 일수에 5000원을 곱한 금액을 지연손해금 명목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2) 늦게 도착한 물건이 채권자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할 때


        앞의 두 사례는 비슷한 방식으로 손해를 산정하였습니다. 둘 다 지체일수에 하루 손해액을 곱하여 총 손해액을 구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산정법을 살펴봅시다. C는 2022. 2. 20. D로부터 Y 웨딩케이크를 50만 원에 샀습니다. C는 D에게 50만 원을 바로 지급했고, D는 3. 1. 진행하는 C 결혼식에 케이크를 가져다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D가 약속을 어기고 맙니다. 약속한 날짜에서 이틀이 늦은 3. 3.에 비로소 케이크를 전달한 것이지요. 화가 난 C는 D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만약 기존 산정법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C는 D로부터 케이크를 받고, 이틀치 지연손해금을 청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이틀 늦게 도착한 웨딩케이크는 이미 결혼식을 마친 C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395조(이행지체와 전보배상) 채무자가 채무의 이행을 지체한 경우에 채권자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하여도 그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지체후의 이행이 채권자에게 이익이 없는 때에는 채권자는 수령을 거절하고 이행에 갈음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일정한 시일 또는 일정한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약속을 정기행위(定期行爲)라고 합니다.* 제395조를 봅시다. 정기행위에서 약속 시간을 늦는 경우, 즉 “지체후의 이행이 채권자에게 이익이 없는 때”에는 채권자는 수령을 거절하고 이행에 갈음하여(대신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C가 결혼식 당일에 급하게 케이크를 구하느라 70만 원을 썼다면, C는 케이크 수령을 거절하고 70만 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정기적"이란 표현과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이 모임은 매달 첫 번째, 세 번째주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입니다"라고 말할 때의 '정기적으로'는 일정 기간을 간격으로 여러 번 반복되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 민법에서 말하는 정기행위는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한자 뜻 그대로 일정한 시일 또는 기간이 정하여져 있는 어떤 행위로서, 그 시일 또는 기간내에 이행되지 아니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한편 “채권자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하여도 그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제395조). 여기서 최고(催告)는 베스트(最高)의 의미가 아닙니다. 채무자에게 이행을 재촉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앞서 본 노트북 사례로 돌아가볼까요. A가 계속 노트북을 반환하지 않을 시 채권자 B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하고(= ‘다음 주까지는 노트북 꼭 반환하세요’), 그럼에도 그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면 B는 수령을 거절하고 이행에 갈음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트북 반환 대신 그 시가에 맞추어 돈으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본래 이행에 갈음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걸 전보배상(塡補賠償)이라고 합니다. 메울 전(塡)에, 꿰맬 보(補)라는 한자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본래 이행을 "메꾸는" 손해배상입니다. 약속시간 위반의 손해는 지연손해금 형태로 구할 수도 있고, 전보배상 형태로 구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가 기본기라면, 후자는 응용 같은 느낌입니다. 후자의 경우, 즉 약속시간 위반에서 전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선 민법 제395조에 따라 ①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최고를 하였음에도 이행을 하지 않은 사정이 있거나, ② 정기행위라서 지체후의 이행이 채권자에게 이익이 없다는 특수한 사정이 있어야 합니다. 








3. 물품관리 소홀, 품질수준 위반과 손해


1) 부족한 만큼 배상하거나


        물품관리 소홀과 품질수준 위반은 손해를 구하는 방식이 서로 비슷합니다. 사실 손해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많이 닮았습니다. 교과서에서는 손해를 '있어야 할 상태와 현재 상태 사이의 차이'라고 적습니다.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 이 "차이"가 발생한 것인지에 따라 두 경우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물품관리 소홀은 “약속 이후에” 차이가 발생한 경우입니다. 약속을 할 당시에는 멀쩡한 물건이었는데 그 이후에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손해가 발생한 것이지요. 반면 품질수준 위반은 “약속 이전부터” 차이가 존재했던 경우입니다. 파는 사람은 분명 10만큼 가치를 지니는 물건이라 하였는데 애당초 5만큼 밖에 가치가 없는, 수준이 떨어지는 물건이어서 손해가 발생한 경우입니다.


        이처럼 물품관리 소홀과 품질수준 위반은 서로 닮은 점이 많습니다. 둘을 묶어서 같이 정리해봅시다. A는 2022. 5. 1. B로부터 X 자동차를 300만 원에 매수하였습니다. 둘은 열흘 뒤에 만나 A는 B에게 300만 원을, B는 A에게 X 자동차를 건네 주기로 하였습니다. B는 X 자동차가 분명 잘 굴러간다고 했는데 A가 실제 운전을 해보니 엔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황 1] X 자동차는 본래 잘 굴러가는 차였는데 B가 계약을 한 뒤 관리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B가 자동차를 험하게 다루었고, 그새 엔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황 2] X 자동차 엔진에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B가 A에게 자동차 품질수준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겁니다.   



        첫 번째 상황은 물건관리를 제대로 안 한 것이고,  두 번째 상황은 약속한 품질수준을 위반한 것입니다. 어느 상황이든 모두 채무불이행입니다. 이럴 때에는 손해의 산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가장 상식적인 방법은 수리비만큼을 청구하는 겁니다. 만약 수리비가 30만 원이라면 A는 B에게 30만 원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혹은 어차피 A가 B에게 매매대금으로 300만 원을 주어야 하니, 300만 원에서 30만 원을 빼고 270만 원만 주겠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군요.





2) 대체할 수 있는 시가(市價)만큼 배상하거나


        채무자가 물건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품질수준을 위반한 경우 우리는 그에게 수리비를 청구하여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약간의 수리를 거치면 물건을 쓸 수 있다는 전제입니다. 만약 훼손의 정도가 너무 심하면 수리가 무의미합니다. 심지어 수리비가 새 물건을 사는 금액보다 더 비쌀 수도 있지요.   


        물건관리 소홀, 혹은 품질수준 위반 정도가 너무 심하여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지경이면 이 약속은 있으나마나 한 약속입니다. 이 경우에는 본래 물건에 갈음하여 손해배상을 받는 게 더 타당합니다. 즉 “전보배상”을 구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A가 B로부터 받기로 한 자동차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고 해봅시다. X 자동차를 수리하는 데에는 500만 원이 들고, X 자동차와 비슷한 수준의 중고차 시가(市價)는 320만 원입니다. 이런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손해배상액은 320만 원으로 제한함이 타당합니다. '그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였을 재산상태',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누렸을 이익 수준이 320만 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채권자 A는 손해배상으로 320만 원을 청구하거나, 어차피 자신도 B에게 300만 원을 주어야 하니 그 차액 20만 원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A가 궁극적으로 누리는 손해배상액은 20만 원입니다.)   







4. 채무자의 고의 또는 과실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단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합니다(제390조). 여기서 고의란 쉽게 말해 "일부러" 약속을 어기는 것이고, 과실은 "실수로" 약속을 어기는 겁니다. 민법 제390조는 고의와 과실의 차이를 알지 못합니다. 일부러 약속을 어겼든, 실수로 약속을 어겼든 채무자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요. (형법이 고의범과 과실범을 아주 다르게 취급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반대로 귀책사유가 없다면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이 없더라도 채무자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법은 과실책임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무과실책임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합니다.*


        채무자는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음'을 주장·증명해야 합니다. 즉 귀책사유의 존부는 채무자의 항변 사항입니다. 따라서 채권자가 제390조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다면 그는 딱 두 가지만 주장·증명하면 됩니다. ①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② 또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 말하면 됩니다. 채무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다는 사실은―분명 채무불이행책임의 세 번째 요건이기는 하지만―채권자가 증명할 내용은 아닙니다.



제390조(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민법 제390조와 제750조를 비교해봅시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제750조). 이를 불법행위책임이라고 합니다. 불법행위책임에서도 "고의 또는 과실"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기까지는 채무불이행책임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요건의 위치가 조금 다릅니다. 제750조에서는 고의·과실 요건이 본문(本文)에서 바로 등장한 반면, 제390조에서는 단서(但書)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말을 전자는 긍정문으로, 후자는 이중 부정문으로 표현한 식입니다. (손해배상책임을 지려면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 한다 = 고의나 과실이 '없으면' 손해배상책임이 '없다')


        이러한 문언 차이 때문에 우리는 두 조문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앞서 채무불이행의 채무자는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음을 주장·증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채무자의 귀책사유가 단서에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충실히 반영한 훌륭한 해석이지요. 반면 불법행위의 피해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 사실까지 피해자가 주장·증명해야 합니다. 조문이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의 존재를 요건사실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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