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어기면 계약이 해제될 수도 있습니다. 해제란 쉽게 말해, 묶인 계약을 푸는(解) 겁니다. 해제를 하면 계약은 없던 것(=무효)이 됩니다. 계약을 푸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마치 부부가 이혼할 때와 같습니다. 부부는 합의를 해서 이혼할 수도 있고, 법으로 정해진 사유로 이혼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특히 한쪽 당사자는 이혼을 하고 싶지 않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람을 핀 배우자와 이혼을 하려 한다면 유책자가 아무리 이혼하기 싫다 하여도 혼인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을 수 있습니다. 법에 정해진 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제840조 참고).
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약은 당사자끼리 합의로 해제를 할 수도 있고, 법에 정해진 사유에 근거해 해제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를 약정해제, 후자를 법정해제라고 합니다. 약정해제에 대해선 특별히 더 알아볼 게 없습니다. 당사자끼리 합의로 묶은 것을, 합의로 푸는 것이니 법이 개입할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법정해제입니다. 법정해제가 문제되는 사안에선 계약 당사자 중 누군가는 계약이 유지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법이 정한 사유로 계약 효력을 없애는 것이므로 매우 강력한 제도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법정해제는 요건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법정해제에 대해 조금 더 알아봅시다.
법정해제를 공부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 채무불이행이 있습니다. 채무불이행에는 이행지체와 이행불능이 존재합니다. 이행지체 또는 이행불능이 발생하면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제390조), 계약을 해제(제544조~제546조)를 할 수 있습니다. 「채무불이행(이행지체, 이행불능) → ① 손해배상청구 또는 ② 계약 해제」
깔끔한 정리입니다. 하지만 가장 훌륭한 정리는 아닙니다. 조문에 가장 충실한 해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서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는 #채권에서, 채무불이행에 따른 법정해제는 #계약에서 논한다고 하였습니다. 조문상 위치도 전혀 달랐습니다. 따라서 두 법률효과를 채무불이행이란 이름 하에 막연히 정리해두는 건 다소 위험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민법 제390조는 채무불이행 유형론을 알지 못합니다. 제390조는 ‘채무의 내용을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라고만 적고 있을 뿐입니다. 제390조 그 어디에도 이행지체나 이행불능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민법 제390조만 공부할 생각이라면 우리는 이행지체와 이행불능에 대해 몰라도 됩니다. 하지만 법정해제를 위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법정해제를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민법 주제가 그러하듯) 조문을 직접 읽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정해제 조문에는 이행지체와 이행불능이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합니다. 조문 제목부터 제544조는 ‘이행지체와 해제’이고, 제546조는 ‘이행불능과 해제’입니다. 따라서 법정해제 공부에 앞서 우리는 두 단어를 숙지해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행지체와 이행불능은 무엇인가요? 이행지체란 '급부의 실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그에게 책임있는 사유로 급부를 적시에 이행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행지체는 쉽게 말해 약속 시간을 어긴 겁니다. A가 2022. 1. 1. B로부터 1000만 원을 연이율 3%로 정하여 빌려갔습니다. 돈은 1년 뒤에 갚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뒤에도 A가 돈을 갚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행지체라고 합니다. 참고로 지체 여부 판단의 기준이 되는 그 약속 시간을 이행기, 또는 변제기라고도 합니다.
이행불능이란 '채무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급부가 후발적으로 불가능해진 경우'를 말합니다. C는 2022. 1. 1. D로부터 멋진 고려 도자기 한 점을 5000만 원에 샀습니다. 둘은 이틀 뒤에 다시 만나 C는 D에게 5000만 원을, D는 C에게 고려 도자기를 건네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바로 다음 날 D가 실수로 고려 도자기를 깨고 말았습니다. 이제 D는 C에게 도자기를 건네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행불능이라고 합니다.
혹은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C는 2023. 1. 1. D로부터 X 아파트를 10억 원에 샀습니다. 둘은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 C는 D에게 10억 원을, D는 C에게 X 아파트 및 소유권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넘겨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E가 등장해 아파트를 11억 원에 팔라고 D에게 제안합니다. D는 제안을 승낙하고 소유권을 E에게 넘겼습니다. 이제 D는 C에게 X 아파트를 양도할 수 없습니다. 이미 E에게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도 이행불능에 해당합니다.
불능은 참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이행불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깐 알아볼까요. 넓은 의미의 불능(不能)은 급부 이행이 불가능한 모든 상황을 총칭합니다. 물리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 사회관념적인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약속한 서류가 불타 없어지는 건 전자에 해당합니다. 반면 약혼자에게 주기로 한 반지가 바다에 빠지는 건 후자입니다. 반지를 건네주는 게 이론상 불가한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심화] 법률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매매목적동산이 인도 전에 압류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학자들은 불능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초학자 신분을 변명 삼아 간단하게만 접근해봅시다. 민법은 우선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불능을 분류합니다. ① 첫 번째 기준은 ‘언제 불능이 됐는가?’이고, ② 두 번째 기준은 ‘왜 불능이 됐는가?’입니다. [그림 3-2]은 이렇게 하여 탄생한 세 종류의 불능을 정리한 것입니다.
(1) 원시적 불능이란 ‘처음부터 급부가 불가능했던 경우’를 뜻하고, 후발적 불능이란 ‘채권 성립 당시에는 가능했으나, 그 이후에 불능이 된 경우’를 뜻합니다. 우리가 앞서 배운 이행불능은 후발적 불능의 한 종류입니다.
(2) 원시적 불능의 경우 채무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를 ‘원시적 불능 도그마’라고도 합니다. 원시적 불능은 이론적으로 접근하면 길을 헤매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이론 말고 실제 조문에 뭐라고 쓰여있는지를 확인해봅시다. 우리 민법전은 원시적 불능을 여기저기 사용하지 않습니다. 딱 한 군데, #계약에서만 명시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535조(계약체결상의 과실) ①목적이 불능한 계약을 체결할 때에 그 불능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자는 상대방이 그 계약의 유효를 믿었음으로 인하여 받은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배상액은 계약이 유효함으로 인하여 생길 이익액을 넘지 못한다. ②전항의 규정은 상대방이 그 불능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목적이 불능한 계약을 체결할 때에 그 불능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자는 상대방이 그 계약의 유효를 믿었음으로 인하여 받은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다만 그 배상액은 계약이 유효함으로 인하여 생길 이익액을 넘지 못합니다(제535조 제1항). 한편 상대방이 그 불능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습니다(동조 제2항). 이를 계약체결상의 과실이라고 합니다.
사례로 볼까요. A는 2022. 1. 1. B로부터 Y 조각상을 500만 원에 샀습니다. 둘은 삼일 뒤에 만나 A는 B에게 500만 원을, B는 A에게 조각상을 건네주기로 하였습니다. 조각상을 옮기기 위해 A는 인부 한 명과 대형 트럭 한 대를 50만 원에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조각상은 사실 계약을 맺기 전부터 부서진 상태였습니다. B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A에게 알리지 않고 조각상을 팔았습니다. 화가 난 A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 계약은 무효입니다. 처음부터 목적이 불능한 계약이기 때문입니다(원시적 불능의 효과). 그리고 A는 B에게 “그 계약의 유효를 믿었음으로 인하여 받은 손해”를 배상하라 요구할 수 있습니다. A는 거래가 유효하다는 전제 하에 인부와 대형 트럭을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50만 원을 지출했습니다. 따라서 A는 B에게 50만 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법은 원시적 불능을 #계약에서만 사용하니까, 우리도 그에 맞춰 좀 더 기억하기 쉽게 문장을 바꿔볼까요. '원시적 불능인 계약은 무효이다. 처음부터 불능인 계약을 체결한 경우 민법 제535조를 사용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3) 급부가 후발적으로 불가해진 경우, 채무자는 급무의무를 면합니다. 이것이 후발적 불능의 첫 번째 효과입니다. 그래서 불능의 항변은 강력합니다. 채무자의 귀책 여부를 따지지 않고 본래 급부의무를 면해주니까요. (면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급부가 더 이상 불가하다는데 무엇을 더 어쩌겠습니까.)
후발적 불능의 두 번째 효과부터는 채무자의 귀책 여부를 따집니다. 경우의 수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① 채무자 잘못으로 채무가 후발적으로 불가능해진 경우와, ② 채무자 잘못 없이 채무가 후발적으로 불가능해진 경우, 이렇게 둘입니다. 전자는 이행불능에서, 후자는 위험부담에서 다룹니다.
불능은 논의의 좌표를 잘 잡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앞서 원시적 불능은 (적어도 민법전에서는) #계약에서만 사용한다고 했죠. 채무자 귀책에 의한 후발적 불능은 #채권에서 논의합니다. '채무자 귀책에 의한 후발적 불능'이란 곧 채무불이행으로서의 이행불능을 의미하니까요.*
(*가끔 '이행불능'을 넓은 의미의 불능과 혼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채무자 귀책 여부와 무관하게 급부가 불가능해진 경우를 이행불능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채무불이행으로서의 이행불능'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편 채무자의 귀책사유 없이 후발적 불능이 일어난 경우는 (적어도 민법전에서는) #쌍무계약에서만 논의합니다. 이 논의를 위험부담 문제라고 합니다. 위험부담은 중요하기 때문에 쌍무계약에 대해 설명하는 제4장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지금은 위험부담 조문만 가볍게 읽어보고 넘어갑시다. (두 조문 모두 "쌍무계약의 당사자"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537조(채무자위험부담주의)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의 채무가 당사자쌍방의 책임없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는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하지 못한다.
제538조(채권자귀책사유로 인한 이행불능) ①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의 채무가 채권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는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채권자의 수령지체 중에 당사자쌍방의 책임없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도 같다. ② 전항의 경우에 채무자는 자기의 채무를 면함으로써 이익을 얻은 때에는 이를 채권자에게 상환하여야 한다.
(5) 대상청구권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대상청구권(代償請求權)이란 '채무가 불능으로 되면서 채무자가 이에 갈음하여 어떤 이익을 얻은 경우에 채권자가 그 이익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후발적 불능이기만 하면 됩니다. 채무자의 귀책사유는 묻지 않습니다.
사례로 볼까요. A는 2022. 1. 1. B로부터 X 토지를 10억 원에 샀습니다. 계약금 1억 원은 계약 당일, 중도금 4억 원은 2. 1., 잔금 5억 원은 3. 1. B가 토지 소유권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넘겨주면 그와 동시에 주기로 정했습니다. 중도금까지는 문제없이 잘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2. 5. 문제가 발생합니다. X 토지가 수용*된 것입니다. 국가는 토지를 수용하면서 보상금 11억 원을 B에게 주었습니다. X 토지를 넘겨받고 싶었던 A는 당황스럽습니다. 이제 둘의 법률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토지 수용(收用)이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하여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단체가 강제적으로 토지의 소유권 등을 취득하는 일'을 말합니다.)
채무자 귀책 없이 후발적 불능이 발생한 상황입니다. B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토지를 A에게 넘겨줄 수 없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후발적 불능의 첫 번째 효과로 채무자 B는 급부의무를 면합니다. (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지를 더 이상 넘겨줄 수 없다는데 무엇을 어쩌겠습니까.) 다만 채권자 A는 채무자 B에게 대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채무가 불능으로 되면서 채무자가 이에 갈음하여 어떤 이익을 얻었습니까? 얻었습니다. 토지가 수용되면서 B는 보상금 11억 원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A는 토지 대신 B가 얻은 11억 원을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A는 그 반대로 잔금 5억 원을 마저 주어야 합니다. A가 대상청구권을 행사한다는 건 계약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대상청구권은 조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조문이 없음에도 학계와 판례가 합심하여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95다38080 참고). 대상청구권은 채무자의 귀책사유를 묻지 않고, 후발적 불능이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상청구권은 #채권에서의 논의입니다.
(1) 해지 또는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합니다(제543조). 방법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두(口頭)로도 해제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법정 다툼까지 간다면 해제를 주장하는 측에서 의사표시의 존재 사실을 주장·입증해야 하므로, 해제를 원하는 쪽이라면 (내용증명을 받은) 서면으로 의사표시를 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제543조(해지, 해제권) ① 계약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당사자의 일방이나 쌍방이 해지 또는 해제의 권리가 있는 때에는 그 해지 또는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한다. ② 전항의 의사표시는 철회하지 못한다.
(2) 제544조는 이행지체에 근거한 법정해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제544조). 여기서 최고(催告)는 best(最高)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행을 재촉(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제544조 (이행지체와 해제)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최고를 요하지 아니한다.
민법 제544조를 앞서 배운 손해배상청구와 비교해봅시다. 제390조에서는 채무자가 "채무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하면 곧바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편이죠. 그런데 이행지체에 따른 계약해제는 어떠합니까?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도 재촉하고, 또 그 기간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상대방이 약속 시간을 어겼다고 곧바로 해제권이 생기는 게 아닌 겁니다. 민법은 한 번 맺어진 약속이 끊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제권의 발생을 이처럼 까다롭게 만들었습니다. 이 원칙은 민법 곳곳에서 등장하니 꼭 기억해둡시다.
(*물론 채무자의 귀책사유도 필요했지만 이는 채무자 항변 사유였습니다.)
(3) 제545조는 정기행위에서의 법정해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앞서 정기행위(定期行爲)란 '일정한 시일 또는 일정한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행위'라 하였습니다. 정기행위는 약속한 "그 시기"가 지나면 곧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최고(催告)를 할 필요도, 상당한 기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545조 (정기행위와 해제) 계약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일정한 시일 또는 일정한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경우에 당사자 일방이 그 시기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상대방은 전조의 최고를 하지 아니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4) 제546조는 이행불능에 근거한 법정해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채무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이행이 불능하게 된 때에는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제546조). 이행지체와 다르게 이행불능은 단순합니다. 최고를 할 필요도, 상당한 기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데 거기서 무엇을 더 재촉(?)할 수 있을까요.
제546조 (이행불능과 해제) 채무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이행이 불능하게 된 때에는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5)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하여 원상회복할 의무가 있습니다(제548조). A는 2022. 1. 1. B로부터 X 아파트를 10억 원에 샀습니다. A는 약속대로 10억 원을, B는 약속대로 아파트 소유권을 줬습니다. 그런데 석 달 뒤에 계약이 해제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B는 A에게 10억 원을, A는 B에게 아파트 소유권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다만 원상회복을 하면서 제삼자의 권리를 해하지는 못합니다(동조 제2항). 제삼자 보호에 대해서는 제2장에서 설명했습니다.
제548조 (해제의 효과, 원상회복의무) ① 당사자 일방이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하여 원상회복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제삼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 ② 전항의 경우에 반환할 금전에는 그 받은 날로부터 이자를 가하여야 한다.
(6) 계약 해제로 인한 원상회복은 서로 동시에 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게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제536조는 동시이행항변권에 관한 조문인데, 이는 제4장에서 더 살펴보겠습니다.
제549조 (원상회복의무와 동시이행) 제536조의 규정은 전조의 경우에 준용한다.
(7) 해제와 해지는 서로 다른 법률용어입니다. (일상생활에선 종종 혼용하는데, 이번 기회에 차이점을 명확히 해봅시다.) 둘 다 계약을 무효로 만든다는 점은 같습니다. 그러나 해제에는 소급효가 있고, 해지에는 장래효만 있습니다.
제550조 (해지의 효과) 당사자 일방이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계약은 장래에 대하여 그 효력을 잃는다.
앞서 소급효(遡及效)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효과를 미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제2장 참고]. 해제에는 소급효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약을 해제하면 계약은 처음부터 무효였던 것으로 됩니다. 하지만 해지에는 장래효(將來效)만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을 해지하면 그 시점 이후부터만 무효입니다. 예를 들어 A가 1년간 유지해오던 X 신문사 구독권을 해지한다고 해봅시다. A가 구독권을 해지하더라도 X 신문사는 A가 지금까지 낸 구독료를 원상회복하지 않습니다. A 역시 지금까지 X 신문사로부터 받은 이익을 원상회복하지 않습니다. 해지 이전까지의 계약은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주고받을 구독료가 없을 뿐입니다.
해지의 장래효는 민법 제550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해제의 소급효를 명시한 규정은 따로 없습니다. 다만 제550조 반대해석상 해제에는 소급효가 있다고 봅니다.
(8)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제551조). 약속을 없애더라도 이미 발생한 손해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계약이 해제되더라도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제551조 (해지, 해제와 손해배상)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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