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Sep 15. 2016

니키 누나

응답하라! 1992~1995!

"오렌지는 오렌지색이고 바나나는 노란색입니다."
 

  대학생이 된 후 시작했던 몇 가지 일들 가운데 하나는 영어 말하기 공부였다. 개인적으로 영어 배우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문과 학생으로서 취업을 생각해서라도 영어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아리에도 가입했고, 학원도 다녔다. 얼굴이 두꺼운 편이라 영어로 말할 때 애매하고 자신 없어도 그냥 아는 대로 지껄였다. 틀리면 선생님이나 잘 하는 사람이 바로 잡아주겠지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성격이 말 배우는 데 도움이 된 편이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언어 감각이 더 좋다고들 한다. 실제로 그간 주변의 사례를 보아도 여자들이 좀 더 빨리 배우는 것 같았다. 발음도 대체로 더 좋고 말도 조리 있게 잘 하는 걸 많이 봤다. 물론 남자들 가운데서도 뛰어난 분들을 많이 보았다. 개인차가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영어교육 전공이셨다. 당시 뱃속에 아기를 잉태하고 계셨는데 학생들을 좀 엄하게 잡는 편이셨다. 선생님들한테 그리 미움받는 편이 아니었지만 유독 이 분한테는 찍혀서 회초리 같은 걸로 여러번 맞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우리 담임 선생님이 주관하는 영어 연구수업 발표가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미리 연구수업 준비를 시키셨다. 그 수업 중에는 선생님이 예문을 읽어 주고 학생이 따라 하는 순서가 있었다. 


“ Oranges are orange and Bananas are yellow.”

(오렌지는 오렌지색이고 바나나는 노란색입니다.)


  아주 간단한 예문이었다. 원래는 선생님이 찍어둔 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치아 교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발음이 자꾸 샜다. 어떻게 하다 내가 지명을 받아 그 예문을 읽었는데 선생님이 보시기에 괜찮았나 보다. 연구수업 발표 때 그 예문을 읽는 학생이 나로 바뀌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영어에 자신이 생긴 것이.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체육, 음악, 미술이었지만 그다음으로 영어가 좋았다. 지금처럼 아이들이 초등학교 혹은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우던 시기가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시작했는데 당시 많이들 보던 교재의 테이프를 틀면 ‘시사~~~ 미들스쿨 잉글리쉬~~~ ~~~~’ 하는 CM송이 흘러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응답하라! 1994! 강촌에서 주일학교 교사회 MT ^^


해외 연수 한 번 가지 않고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구사하던 그녀


 그렇게 세월은 흘러 흘러 대학생이 되었다. 나름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고 성당에서 영어회화 서클도 만들어서 운영하며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다. 아쉬운 건 남들처럼 해외연수라든지 배낭여행으로 영어권 국가에 가보지 못했던 거다. 당시에 그런 붐이 일기 시작하던 때인데 아쉽게도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대학교 1,2학년 때 성당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정말 그 어떤 동아리보다 깊숙이 빠져서 활동했다. 거기서 같이 주일학교 교사일을 하던 친한 누나를 통해 니키라는 누나의 친구를 알게 되었다. 누나의 동갑 친구였으니 역시 누나라고 불렀다.


 니키 누나도 영어가 전공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까무잡잡하고 조그마한 얼굴. 조금 느릿느릿 쫄깃한 말투. 무언가 응시하며 진지하고 또박또박 이야기하던 모습. 외모는 내가 오빠처럼 느끼게 하던 여자. 좋고 싫음이 분명했고, 특히 칭찬을 할 때는 정색하며 말해 주던 사람.


 여러 가지로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던 그녀에게서 정말 놀랐던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영어였다!


 그때까지는 나도 국내파로서는 발음도 꽤 좋고 영어를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안이한 생각은 니키 누나를 만나고서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영어 전공자니까 영어를 잘 하긴 잘 할 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영어 전공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더라도 딱히 놀랄 정도로 뛰어난 말하기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당시엔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와 이야기해 보니 해외 경험도 없다고 하니 나와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한 번은 그녀와 전화를 하다가 우연히 영어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장난 삼아 나오게 된 영어 대화는 니키 누나의 거리낌 없는 대반격으로 통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내가 먼저 시작을 해놓고 중간에 꼬리를 내리기가 뭣해 대화를 이어가긴 했지만, 이건 외국인끼리 하는 영어 의사소통이라기보다는 영락없이 네이티브 미국인과 영어에 관심이 많은 한 외국인이 나누는 모양새였다.


 나중에 물어보았다. 어떻게 해외 연수 한 번 안 가고 이렇게 미국 본토 사람처럼 말할 수 있는지? 너무 놀랍고 너무 부럽고 또 영어 좀 한다고 까불던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녀는 특별한 비결을 알려달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고 했던 것 같다. 그저 영어에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고 늘 관심을 가졌다고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잊히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우리말로 이야기할 때와 영어로 말할 때 변신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달라지던 태도와 분위기였다. 우리말로 느릿느릿 또박또박 말하곤 하던 니키 누나는 영어로 말하게 되면 그야말로 프로페셔널로 바뀌는 것이었다. 마치 뛰어난 연기자가 카메라 큐 싸인이 들어가면 극중 인물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은 모습을 느꼈다. 영어로 말할 때의 그녀는 자신감 그 자체였고 목소리톤도 올라가고 훨씬 적극적이고 당당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여자들의 유형 가운데에 확실히 그녀는 드문 축에 속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똑같은 성격과 모습을 가진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비슷한 타입의 사람들은 같은 문화권 안에서는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니키 누나는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는 좀처럼 조우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지닌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Stairway to... " ; 신경호 작가님의 사진 


 생각이 가끔씩 난다. 언젠가부터 연락이 끊어졌다.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고 캐나다 사람과 결혼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잘 살고 있겠지. 하지만 정말 우리나라가 그립지 않을까? 의사소통의 문제는 전혀 없을 테지만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의 추억이 담긴 고국이 그립지 않을까? 한가위에도 쉬지 않는 일본에 살면서 문득 니키 누나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더운 바람이 조금씩 선선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니 슬며시 다시 떠오른다.


 한때는 그녀가 보고 싶어 아직 신분당선이 뚫리지 않았던 지하철을

한 시간 반이나 타고 정자역까지 가기도 했던 내 모습도.  


 열정에 들떠 미래를 이야기하고 사랑과 인생을 논하던 우리들의 지난 표정들도.


 실연에 아파하고 숨쉬기도 어렵다 느끼던 순간들도...



 고마워요, 니키 누나.  소중한 시절을 함께 해주어.


 어디에 있든 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그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