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랑을 할 때

사랑 앞에서 다른 내가 되는 나

by 안드레아
'바다에 지는 별' 작가님과 함께 새롭게 시도해 보고 있는 릴레이 소설입니다.
부족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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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편

https://brunch.co.kr/@ndrew/108

Photo taken by Jay Choi


몇 달 만에 돌아오는 고국. 이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아니라 출장길이다. 그리 긴 시간을 해외에서 보내다 온 게 아니었음에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한글 간판들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출장 일정으로 오기는 했지만 이번엔 좀 더 특별한 일이 있다.


영종대교를 건너며 보이는 파아란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지만 아까부터 하늘에 무언가 걸려 있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고 다시 반대편 하늘에 이내 나타난다. 가슴이 왜 이렇게 뛰는 걸까. 마치 스무 살 초반,휴가를 받고 들뜬 마음으로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그때의 나로 돌아가 버린 걸까.


이번에 만나면 마음속의 이야기를 꺼내 보여 주리라. 용기가 없어 다하지 못한 말을 하나씩 꺼내서 또박또박 읽어 주리라.


구름도 없는 파아란 하늘에 구름처럼 걸린 그녀의 미소진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아,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고도 그녀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내 생각엔 그녀도 내게 호감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쌀쌀맞게 대하니… 문자를 보내도 전처럼 따뜻한 느낌이 없고. 사무적인 응대를 받는 느낌마저 드니…


아냐, 내가 좀 무심하긴 했어. 호감을 보여줄 때 잘 했어야 하는 건데. 바보처럼 너무 많은 걸 생각한 거야. 그냥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좀 했어야 하는 건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끊이질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차는 서울역에 도착했고 때마침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숙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나자고 주소를 보내온 것이다.



아마도 카페는 큰 도로에서 숙대 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마음이 급해진다. 걸음걸이가 빠르다. 10여 미터 전방으로 멜리사가 보낸 가게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Frogman


프라그맨? 개구리맨? 이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며 살며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문을 열자마자 카페 안을 180도 둘러본다. 아니, 180도를 다 돌기도 전에 동공이 확대되면서 아름다운 대상이 눈 안에 가득 차 버린다.


내 눈을 사로잡은 대상은 지금 카페 한쪽 벽면을 장식한 귀걸이들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또 차오르는 미소를 머금고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잠시 뒤에서 바라본 그녀의 모습. 은은하게 펄이 가미된 자줏빛 블라우스와 검은색 바지 차림의 차분한 듯 눈에 띄는 - 아마도 내 눈에는 더더욱 그렇게 비칠 - 어떤 여인의 상.


살금살금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다가간다. 바로 등 뒤까지. 그 자리에 선 채 그녀의 몸짓과 손짓을 관찰한다. 그 공간은 내가 카페에 발을 들이민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오로지 그녀만이 멈춘 시간 속에 흐르고 있다.


“ 하나 사드릴까요? ”


“ 어맛, 언제 오셨어요? ㅎㅎㅎ ”


그 순간 카페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 잘 지내셨어요, 멜리사님? ”


“ 잘 지냈을 것 같나요? ”



이제는 호감 가는 이성 앞에서 그리 긴장하거나 작아지는 느낌을 받지 않는 나였다. 물론 그녀를 만나러 오면서 마음이 들떴고 설레긴 했지만 풋풋함만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니었다. 적어도, 나중에 그 의미가 '잠수부'라는 걸 알게 되었던 이 카페의 문을 들이밀고 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를 보고 동공이 반사적으로 먼저 반응하면서 이미 나는 몸에 대한 통제권을 상당히 상실했다. "하나 사드릴까요?"라고 첫마디를 던진 것은 한 번의 심호흡을 한 뒤였고 그 뒤의 말과 행동은 생각하며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자연스런 분위기로 가고자 하는 작은 사투의 결과로 나오는 말들이었으며 행동이었다.


마음에 담고 있던 이야기들을 꺼내 보여 주려 노력했다. 만날 수 없었던 지난 몇 달의 시간 속에서 내가 얼마나 그녀를 그리워했는지 잘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나 세련되게 포장해서 표현하고 싶었다. 보고 싶었지만 자주 연락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었던 것처럼 나도 나름 바쁜 삶 속에서 정신없이 지내지만 그 와중에 그녀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비치게 하고 싶었다.


남자치고 말을 잘 하는 편이라는 평을 듣는 나였다. 그녀 앞에서도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어느 정도 있었다. 리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을 사귀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여자의 마음을 알고 어떻게 하면 그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잘 하지 못했다. 일단 평소에 그렇게도 또박또박 이야기하던 내가 자꾸 발음을 틀렸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 얘기를 하며 '지도자'라는 단어를 쓰는데 '지오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주도자'라고 발음이 헛 나오기도 했다.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간단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직접 꺼내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빙빙 돌고 변죽을 두드리다 보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자꾸 맥을 벗어나는 거였다.


" 그래서요. 나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녀가 내 말을 가로막으며 쐐기를 박았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 그랬구나? 나 많이 보고 싶었구나? ㅎㅎㅎ"


눈 앞에서 그녀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 네... 현영 씨가 정말 생각이 많이 났어요. "


산소를 공급해 주고 내보낼 공기만 가득했던 폐가 스스슥 꺼지고 맑은 공기가 다시 후욱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나를 위해 숨구멍을 틔워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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