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읽는 남자 8편

원하지 않은 능력의 발현

by 안드레아

*전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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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나, 괜찮아? "


켄타로는 급히 신발을 벗고 마코의 집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여러 번 그녀를 바래다주러 집 앞까지 왔었으나 안까지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날씨 탓인지 몰라도 집안의 분위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어둡고 약간은 처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말도 못 하며 켄타로를 보자마자 주르륵 눈물방울을 흘려보냈다. 그가 그녀를 두 팔을 벌려 안았다. 그녀의 얼굴이 그의 가슴에 묻혔다.


그는 무언가 얘기를 꺼내려는 듯 입술을 움직이다 가만히 그녀를 안고 있기로 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느껴 보지 못한 종류의 감정 속에 사로잡혀 어떤 말도 제대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코 레나가 드디어 얼굴을 들었다.


"와타나베 씨는 좋은 사람이었어."

물기 마르지 않은 눈으로 그녀가 운을 뗐다.


"어떻게 그런 선량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딸이 하나 있어. 중학생. 너무 불쌍해. 칸나 이제 어떻게 살아갈지.."


"레나, 지금은 당신도 충격이 너무 커. 일단 당신부터 좀 추슬러. 우리 메시아로 가서 아침을 좀 먹자. 이대로는 당신 아무것도 못해."


" 배는 안 고파요. 좀 눕고 싶어."


" 알았어. 내가 옆에 있을 테니 좀 눈을 붙여요. "


그녀를 안방 침대에 눕히고 그는 화장대 옆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잠을 청하려다 눈을 다시 떴다.


"켄타로, 이리 와서 옆에 같이 있어 줄래요"


그가 침대 위로 올라가 앉았고 그녀는 모로 누워 그의 다리에 팔을 감았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진 듯한 그녀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몸을 움직이면 그녀를 깨울까 봐 그는 가만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고요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지켜 보는 남자.

햇살이 유리창으로 비쳐드는 아침.

마치 한밤중처럼 고요에 젖어 있는 방.

그는 여지껏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부드러운 숨소리만 빛나는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와타나베 씨의 죽음으로 인해 한동안 마코 레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다른 동료들, 특히 그녀와 함께 일했던 여자 간호사들 대부분이 큰 충격을 받았고 제대로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특히 마코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했다. 결국 밤근무를 수행할 수 없어 병원측에 말해 낮근무로 조정했고, 일이 끝나면 누구도 만나지 않고, 어떤 곳도 들르지 않은 채 곧장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켄타로는 매일 최대한 일찍 일을 마치고 마코의 집으로 향했다. 총기를 잃은 그녀 옆을 지켜주는 일이 그가 맡은 최선이었고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염려되어 식사를 거르지 않도록 신경썼다.


그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지금 세상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사람을 등쳐고 칼부림하는 놈들이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인지. 해외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도록 헌법까지 뜯어 고치려고 하면서, 정작 이런 시골 구석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선량한 보통 사람들까지 살해하는 버러지 같은 놈들이 활보하도록 방치하는 것인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였다. 하얀색 크라운 승용차가 켄타로의 차를 바싹 따라 붙었다. 가운데 백미러로 슬쩍 뒷차 운전석을 살폈다. 썬글라스를 착용한 남자가 타고 있었다. 속도계를 보니 시속 90km 전후. 보통 이 그린파크 옆 도로를 달릴 때 70km 정도를 달려도 빠른 편인데 90km을 달리는 켄타로의 차를 뒤에서 바싹 붙었다면?


비키라는 소리다.


그는 속도를 올렸다. 100km. 110km. 120km.

크라운은 처지지 않았다. 일차선에서 두 차는 맹렬한 속도로 치고 나갔다. 켄타로가 비키지 않을 거라 판단했는지 크라운이 갑자기 순간 가속하며 왼쪽 차선으로 변경했고 어느새 그의 차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그 순간 크라운 운전석의 창이 열리면 썬글라스 사내가 켄타로쪽을 바라 보았다. 켄타로도 왼쪽 조수석 창문을 열고 사내를 노려 보았다.


사내가 씨익 웃으며 켄타로를 바라 보는데 뭔가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아니, 저 자식 뭐지? 검은 옷에 콧수염을 기르고 저 입속에 저게 뭐야?'

켄타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반짝이는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둘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사거리에 멈춰섰을 때 썬글라스 사내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왔다.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켄타로의 창문 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씨익 입속이 드러나게 웃는다.


입속이 죄다 금니 투성이였다. 그래서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던 것이다. 사내가 문을 열고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 켄타로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가슴이 엄청난 두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고 온몸에 싸늘한 기운이 머리끝에서 목덜미를 지나 몸통 전체로 휩쓸고 지나갔다.


(계속)


*나무등걸 표제 사진 : 원당희 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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