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코지로
*전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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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와카토 다리에서도 50대 남자와 추격전을 벌이다가 큰 사고를 당했던 그다. 순간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척 보기에도 인상 더러운 남자와 엮이게 됐다.
‘어쩌자고 도로 한가운데서 차를 내린단 말인가.
역시 야쿠자였나?
저 미친놈 왜 이리로 온 거야?
날 때리려고 하는 건가?
아, 재수 정말 옴팡지게 없는 날이네!’
그 짧은 순간에 절망감과 후회가 머리카락이 다 빠지도록 진하게 몰려왔고 누군가 이 곤경에서 급히 구해주기를 간절히 너무나 간절히 바랐다.
금니 사내가 차창을 열라는 듯 손으로 차창을 톡톡 두드렸다. 사내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도 공포스러웠겠지만, 저런 폭력배가 비열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건 더더욱 몸서리쳐지고 참기 어려운 공포감을 만들었다.
켄타로는 할 수 없이 창문을 열었다.
“야, 너, 켄짱 맞지?”
놀랍게도 사내가 켄타로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였다. 뒤에서 뭔가 사이렌 소리 같은 게 들리기 시작했다.
“삐이~~~~~~이~~~~~~~~잉~~~
지금 즉시 도로에서 차 안으로 들어가 주십시오.
키타큐슈 경찰입니다.
위험합니다. 빨리 차 안으로 들어가 주세요.
사거리를 건너 왼쪽 편에 차를 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 아.. 이건 뭐지.
아.. 아! 살았다! 살았어!!'
금니는 난데없이 나타난 경찰차에 적잖이 당황했고 곧바로 순순히 차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신호는 녹색 등으로 바뀌었고 금니와 켄타로는 모두 사거리를 지나자 말자 도로 왼편으로 차를 붙였다.
“신분증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뒤쫓아 온 하얗고 까만 경찰차에서 두 명의 경찰이 내렸고 금니와 켄타로에게 한 명씩 다가가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켄타로는 경찰에 협조하면서 슬쩍슬쩍 금니쪽을 살폈다. 금니는 금세 온순한 양이 되어 경찰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고 있었고 자초지종을 제멋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금니는 켄타로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경찰에게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마치 켄타로로 하여금 자기 이야기를 잘 들으라고 소리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 아, 그러니까 저 친구가 제 중학교 동창입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길에서 만나게 돼서 너무 기쁜 나머지 연락처 좀 받으려고 빨간불일 때 내린 겁니다.”
금니가 경찰에게 말했다.
“켄타로! 나야, 나! 나 코지로야! 기억 안 나냐?”
금니가 켄타로를 향해 소리쳤다.
순간 켄타로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사내가 검은 색안경을 벗은 모습을 정면으로 쳐다보았을 때다.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지만, 그게 누군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짝이었던 시미즈 코지로.
- 20년 전 히코시마 중학교 2학년 교실 -
“켄타로, 넌 좋겠다. 공부 잘해서. 난 말야. 공부를 하고 싶은데 책이 안 읽어져.”
“내가 무슨 공부를 잘 해. 그냥 겨우겨우 따라가는 수준인 걸. 근데 코지로, 너 공부하고 싶기는 한 거야? 그동안 보아온 널 보면 공부랑은 영 거리가 멀었던 것 같아서”
“그래,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하지. 나도 공부하기 싫어서 친구들하고 놀러만 다니고, 담배랑 술도 일찍 시작했으니… 아무튼 지금은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도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온몸에 좀이 쑤셔서 말이지.”
“ 야, 그러지 말고 나도 너 노는데 좀 데리고 가 주라. 거기 우리 학교 킹카 여자애들도 있다면서? "
" 아, 히로세 나에? 오카모토 에리카? 히히. 있지. 있지. 내가 소개해 줄게. 친해. "
“ 여보세요. 저 사람 아냐구요?"
경찰이 켄타로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색안경을 벗은 건너편 옛 친구와의 일이 생각나서 잠시 멍했던 그는 정신이 들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네, 알아요.
중학교 동창입니다.”
“진짜 동창 맞아요? 저 사람 보아하니 불량배 같은데 괜히 무서워서 지금 친구라고 맞장구쳐 주는 거 아니세요? 괜찮으니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 아뇨. 정말 친구 맞아요. 오랫동안 만난 적은 없지만 선글라스 벗은 얼굴 보니까 기억이 납니다. 맞아요. 틀림없어요. 시미즈 코지로라고 이름도 정확히 기억합니다.”
“ 흠.. 알겠어요. 일단 기록을 해야 하니 여기다가 서명 좀 해주세요. “
도로 옆에 차를 세워둔 채 켄타로와 코지로는 반 시간 남짓 경찰의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코지로는 아마도 벌금 딱지를 뗀 것 같았다. 도로교통 방해 따위의 명목으로 보였다.
"켄타로, 정말 희한하게 만났다. 아까 내 앞에 얼쩡거리던 차에 네가 타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
"말도 마라. 난 웬 미친놈이 뒤에서 그렇게 미친 듯이 쫓아오나 했어. 아까 사거리 앞에서 멈춘 후 니가 차에서 내려 내 쪽으로 올 때는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혼났다."
"켄타로, 내가 지금 급히 갈 데가 있어서 그런데 연락처 좀 알려줘."
"어, 그래. 내 번호는 090-9787-3890"
"나는 090-4848-8844야 히히"
"켄타로, 오늘 좀 웃기게 만나긴 했지만 반가웠다. 연락할 테니 다시 따로 만나자. 꼭 만나.
나 먼저 간다."
"어어, 그래.. 연락하자.."
야쿠자들이 좋아하는 번호가 4번과 8번이라는데... 코지로의 번호는 정확히 4와 8로 이루어져 있었다. 웃으면서 전화번호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속으로 찬 바람이 휭 하니 부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릴 때 코지로와 켄타로는 각각 어울리는 무리가 달랐다. 코지로는 소위 당시 잘 나간다는 좀 껄렁한 녀석들과 어울려 다녔고 켄타로는 지극히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둘은 같은 반 짝이었고 코지로가 반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실은 코지로의 마음이 순수해 보였고 착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졸업 후 둘은 단 한 차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켄타로는 그저 보통 아이들처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코지로는 들리는 소문으로는 공업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중간에 퇴학을 당했다고 한다. 연락을 일부러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같은 학교에 다니거나 집이 가까이 있거나 하지 않으면 여간해서 따로 만나고 연락하는 일이 드물었다.
기분이 좋질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만나는 일이 보통의 경우라면 반갑고 유쾌할 수 있지만 오늘 코지로와의 만남은 최악이었다. 게다가 어릴 적 얼굴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미 그 인상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보통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