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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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 내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말야. 자기 병원일 좀 쉬면 어떨까 해.
지금 이 상태로는 당신 신경쇠약에 걸리겠어."
"....."
"뭘, 망설여. 일하는 시간대를 밤에서 낮으로 바꾸긴 했지만,
당신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잖아. 우리 같이 좀 길게 휴가를 내고
멀리 여행이나 가자. 당신 여행 가고 싶어 했잖아. "
" 고마워, 생각해 줘서. 근데 잘 모르겠어. 생각 좀 해볼게."
" 우리, 배 타고 한국에 놀러 가자. 후쿠오카에서 페리로 세 시간이면 갈 수 있대.
부산까지. 당신 한국 놀러 가고 싶어 했잖아. 거기 실은 친척분들도 사시고 내 친구도 있고 해서
안내도 잘 해줄 거야."
"부산? 부산... 좋다. 가고 싶다."
마코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아직 한 번도 타보지 못했지만 시모노세키 항구와 후쿠오카 하카타 항구에서 페리로 세 시간 정도면 부산항까지 닿을 수 있다고 들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한국이라는 나라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그녀. 켄타로는 부산에 친구가 살고 있기도 하거니와 어린 시절부터 친척들이 살고 있는 이웃 나라 한국에 여러 번 오갈 기회가 있었다. 그는 마코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김치, 떡뽂이, 감자전, 잡채, 삼겹살, 돌솥비빔밥, 아 또 뭐더라.. 그래 순대, 빈대떡..'
마구 선을 넘어오던 그 사람들..
맛난 먹거리가 가득한 곳, 일본의 친절함과 상냥함과는 또 다른 살갑고 친근하고, 마구 선을 넘어오는 한국인들이 사는 곳. 매번 한국이라는 나라를 방문하면 그는 지금껏 살아온 모국과 지척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다른 나라가 있다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어쩌면 마코에게는 이런 경험이 그녀를 다시 살아 숨 쉬게 해줄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오래전에 부산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흔히 찾는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 자갈치 시장, 달맞이 고개의 카페길. 친구의 안내로 일정 내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는데 조용하고 고즈넉한 키타큐슈와는 사뭇 다른 생기와 활력을 부산이라는 항구도시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대로 있을지 모르겠지만, 십여 년 전 부산의 달맞이 고개를 방문했을 때 친구는 '추리문학관'이라는 곳으로 그를 데려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조금은 생뚱맞게 우뚝 솟아있던 사각형 빌딩 카페. 카페가 한 층이 아니라 작은 빌딩의 모든 층이 다 카페였다. 뭐랄까. 모던한 느낌이 아니었다. 깔끔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서재처럼 꾸며진 실내. 책장마다 빼곡히 들어찬 책들.
아가사 크리스티, 코넌 도일, 모리스 르블랑, 애드가 앨런 포...
차 한 잔을 시켜놓고 차를 마시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차를 마시는 행위를 하는 것보다 한 방향 한 방향, 한 지점 한 지점, 두리번거리며 관찰하는 행위에 더 자연스레 기울었기 때문이다. 창 밖으로는 푸른 바다가 보이는데 실내는 조금 어둡고 아주 약각 칙칙한 느낌마저 들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켄타로가 기억하기로는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2학년 사이에 추리소설에 심취해 가장 집중적으로 탐독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는 독서의 범위가 좀 더 넓어져 추리소설 이외의 책까지 나가다 보니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았던 추리소설책들에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게 되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자 VS 추적자'
추리소설을 읽으며 그는 때론 범죄자가 되기도 때론 탐정이나 형사가 되기도 했다. 어쩔 때는 범죄의 희생자에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고 범죄자 편에 선 지인이나 조력자의 입장에 서는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또한 이 모든 쫓고 쫓기는 관계와 스토리의 전개를 모두 꿰뚫어 보는 절대자인 양 하며 작품 속 캐릭터들을 분석하고 평가하기도 했다.
혹시? 죄를 짓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는가?
인간은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놀라우리만치 확실한 잣대로 평가를 내린다. 스스로 하는 생각과 행동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고 이미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는 순간 자체 평가는 내려져 있다. 흔히 '양심'이라고 불리는 자가 조절 기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그런 자체 평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쉽게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틀림없이 제대로 판단하고 평가하기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그 평가가 순식간에 바뀌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바뀌기도 한다. 같은 사람의 경우라 할지라도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서 판단과 평가 결과가 변하지 않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
만일 내가 객관적으로 잘못된 일 혹은 죄를 지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보통의 인간은 틀림없이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혹은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인식하고 평가를 내린다. 그 인식과 평가가 비록 0.001초의 찰나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머리나 마음속에서만 이루어지는 프로세스가 아니다. 일단 죄를 짓게 되면 몸에서 반응을 하게 된다. 죄의 경중에 따라 때로는 가벼운 눈꺼풀의 떨림으로, 때로는 살갗이 파르르 일어나는 반응으로, 얼굴빛이 푸르게 혹은 붉에 변하기도, 몸에 한기를 느끼기도, 식은땀이 한순간 몸을 적시기도, 다리가 풀리기도,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치기도, 근육에 잔뜩 힘이 들어가 온몸이 경직되기도, 잠시 눈앞이 환상으로 뒤덮이기도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