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공장의 비밀
레나, 내가 좀 이상해졌어.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 아니, 다른 사람들의 사악한 생각이 보여..
켄타로: "레나, 혹시 당신 내 생각 느껴질 때 있어?"
마코 레나: " 응? "
켄타로: " 혹시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보일 때가 있냐구? "
마코 레나: " 당신 생각이 보이냐구?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 아, 가끔 당신이 핑계를 대는 건 구별이 가. 친구 좋아하는 당신이 이 친구, 저 친구 약속이 연달아 생기면 자연스럽지 않은 이유를 대는 거. 후훗."
켄타로: " 아.. 하하. 근데 나 그런 적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마코 레나: " 그래, 자주 그러는 건 아니야.
당신 생각이 보일 때가 있냐고 물어보길래.. "
켄타로: "레나, 근데 나 있잖아. 최근.. 아니, 실은 좀 됐는데..."
레나는 그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빼꼼히 쳐다보았다. 이어지는 켄타로의 이야기는 사뭇 예상하지 못했던 종류의 말이었다.
켄타로의 회사는 폐자원을 활용하는 리사이클링 업체이다. 예를 들면, 폐타이어를 값싸게 구매해 등급별로 나눈 뒤 운동장 바닥이나 놀이터의 완충재 생산업체에 재판매한다. 또는 전자회사에서 나오는 회로기판을 수거해 그 안의 귀금속과 각종 비철금속을 분류해 부가가치를 높여 재판매하는 따위의 수익모델을 가지고 있다.
몇 해 전부터 회사는 수익성이 악화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똑같은 물건을 비슷한 양만큼 취급하고 있고 전체적으로 등락폭은 있지만 구매와 판매 사이의 가격 변동도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구매 가격이 비싸지만 그만큼 판매 가격을 올리고 있었고, 반대로 내려가면 판매 가격도 낮추는 식으로 가격 정책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회사의 영업이익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문제를 인식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조용히 내사에 착수했다. 켄타로는 원래 판매를 담당하는 영업 직원이었지만, 경영진의 특별 지시를 받고 비밀리에 내사에 투입되었다. 명목상으로는 국내 판매와 수출 촉진을 위해 회사의 각 지역에 있는 공장들을 방문해 구매 담당자들을 만나고 재고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물론 켄타로 혼자 투입된 것은 아니고 몇몇 경영진의 지시를 받은 본사 요원들이 각자 물밑 미션을 수행하게 되었다.
일본 전 지역에서 가장 많은 물건들이 수집되고 있는 요코하마 공장으로 출장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거기서 공장장과 관동 지역 구매 담당자들을 만났고 검수 요원들과도 면담을 했다. 매번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느낀 바이지만, 이곳의 기류는 다른 곳과 달리 본사 직원들에게 상당히 배타적이었다. 주요 고객들의 니즈를 전달하고 품질 개선을 위해 협의를 하고 싶었지만, 요코하마 공장 사람들은 판매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회사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공장으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내세울 뿐,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거의 보이질 않는 분위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부사장에게 내사를 위한 지시를 직접 받고 있던 켄타로는 이러한 분위기를 가능한 한 단시간 안에 보고했다. 부사장은 그의 보고를 받고 약간 동요하는 듯했으나 그의 반응은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한다는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영진 측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그동안 여러 차례 공장장을 비롯해 요코하마 공장의 관련자들에게 시그널을 보냈다고 한다. 좋은 말과 경고를 섞어가며 개선을 위해 나름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들은 그때만 반짝할 뿐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켄타로가 요코하마로 온 지 사흘 째 되는 날, 스즈키 부사장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재무 쪽의 과장 하나를 대동해서 말이다. 본사에서 가장 실력있다고 알려진 나카타 과장이었다.
"수고가 많네, 켄타로 과장. 자네도 감잡았겠지만 요코하마가 문제가 많아."
"네, 부사장님. 실제로 회사에 해를 입힌 증거를 찾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본사와 소통하고 있는 방식 자체만으로도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보았네. 회사 매출에 가장 큰 기여를 해왔고, 이곳 공장장을 비롯해 구매 담당자들, 검수 요원들, 사무직원들 모두 수십 년 한 곳에서 일해 잔뼈가 굵다 보니 자존심도 세고 도통 누구 말을 들어먹질 않는군.
내일부터 장부와 재고를 하나씩 대조하면서 실사를 할 거야."
"아, 그래서 나카타 과장과 함께 오셨군요."
"그래 맞아, 하지만 실사를 위해서 자네 도움도 필요하네.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네. 도와주게. "
"네, 부사장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스즈키 부사장은 나카타 과장과 함께 요코하마 재고 실사를 꼼꼼히 해나갔다. 본사에 보고된 서류상의 재고 기록과 실제 요코하마 공장 및 야드에 비축된 각 물건들을 품위별로 하나씩 체크해 나갔다. 명목은 악성 재고 파악과 처리 방법을 강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판매 담당인 켄타로는 재고를 체크하면서 각 제품별로 고객들의 요구사항과 클레임 사례들에 대해 언급했고 개선을 위한 포인트들을 짚어 전달했다.
본사에서 온 직원들이 사무실에 들어와 이런 일련의 작업들을 해나갈 때 이곳 요코하마 공장 직원들의 분위기는 직접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불만과 냉소가 가득했다. 회사 매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자신들을 믿지 않고 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느냐는 소리 없는 외침이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본래 사람을 의심하고 냉정하게 대하는 것이 불편한 성격인 켄타로는 평소와는 너무 다른 이와 같은 감사 성격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미소가 사라지고 저마다 적대적인 눈빛으로 그를 대하는 요코하마 공장의 직원들. 이전에도 출장으로 요코하마를 자주 방문했고 그때마다 그리 살가운 풍경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지금처럼 마치 적진에 들어온 병사처럼 압박감과 긴장을 느낀 적은 없었다.
켄타로 일행은 재고 파악을 위해 창고에 있었다. 현장 재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영업/재고 책임자인 오가와 부장과 검수 담당인 후쿠야마 대리가 동석했다. 퀴퀴한 냄새가 슬며시 콧가를 스쳐 흐르는 가운데 형광등 불빛이 쌓아둔 물건을 무심하게 비추고 있었다.
때마침 요코하마 공장의 주요 공급처 중 하나인 마루나카 쇼텐의 트럭이 창고 옆 계량대에 오르는 게 보였다. 트럭의 높은 운전석 위로 수건을 머리에 둘러쓴 운전수가 문 앞에 있던 검수 당당 후쿠야마 대리를 발견하고 손을 들며 씨익 웃음을 날렸다. 후쿠야마는 스윽 한 번 눈빛을 날릴 뿐 마루나카 운전수에게 응수하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켄타로는 뒤통수에 찌릿한 통증을 느끼고 뒷목을 왼손으로 잡아 쥐었다. 최근 몇 달 전부터 간간히 느껴지던 통증이 요코하마에 온 이후로 간격이 짧아졌다. 통증과 함께 역시 이전처럼 눈앞이 잠시 밝고 하얘지는 것이었다. 그 빈혈과도 같은 증상으로 눈앞이 하얗게 되면서 화면 아랫부분에 자막처럼 느껴지는 색을 알 수 없는 메시지 같은 것이 보였다. 그 메시지는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 특히, 요코하마 공장 소속 직원들에 대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켄타로는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며 뒷덜미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눈은 그 색을 알 수 없는 메시지를 필사적으로 읽어내고 있었다. 이미 이런 패턴으로 그는 그 메시지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읽어내는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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