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읽는 남자 12편

수학 공부를 하는 방법

by 안드레아

샤워기에서 제법 뜨거운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정수리로 끊이지 않고 쏟아 떨어지는 물줄기 때문에 머리로부터 뒷덜미로 이어지는 간지러운 듯 기분 좋은 몸서리와 같은 느낌이 등줄기 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켄타로는 머리를 타고 뚝뚝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를 눈 아래로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내 머리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이건 마치 미국 외화 시리즈에서나 나옴직한 일 아닌가.

이거 혹시 몸 어딘가에 이상이 생겨서 나오는 부작용 아닐까.

레나는 내 이야기를 듣고 온전히 믿어 주는 것 같지 않았어.'




" 켄 짱, 정말 그런 게 가능하긴 한 거야? "

레나가 반쯤은 걱정스럽고 반쯤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 음... 그래.. 이상한 이야기야. 내가 당신이라도 이런 이야기는 그냥 편하게 들을 수 없었을 거야. "

켄타로는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레나의 반응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당연한 반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 아니 그게 아니라. 어.. 내가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지만, 나한테는 다 말해 줘요. 난 켄 짱 믿어. "

켄타로의 얼굴에 스치는 미세한 표정을 읽어내려 애쓰며 마코 레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아 조금 혼란스럽고 의아해하는 자기 마음이 남자 친구에게 혹시 상처를 주는 게 아닐까 걱정하면서 말이다.




요코하마 공장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스즈키 부사장과 나카타 과장은 심증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재고 실사 과정에서 명확한 증거가 잡히지 않은 채 며칠이 금세 지나가 버렸다. 켄타로도 요코하마 공장의 구매와 검수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꼬투리 잡을 만한 건수들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정상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찾아 증명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켄타로에게는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사람들이 관여했는지가 보이는 것이었다.


바로 그에게 생긴 그 이상한 현상으로 인해서.


이틀 전 요코하마 공장의 창고에서 오가와 부장과 후쿠야마 대리를 만나 재고와 검수 관련 설명을 듣고 있을 때 깨닫게 된 것이다. 당시 거래처 마루나카 쇼텐의 트럭이 공장 야드로 들어왔고 무게를 재기 위해 공장 고정식 계량대 위로 올라서던 순간이었다. 면도를 제대로 하지 않아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올라온 운전수가 후쿠야마 대리를 향해 다소 느끼한 웃음을 짓던 그 순간이었다.


눈앞이 하얘지면서 나타나는 불투명하고 색감이 불분명한 메시지를 통해 켄타로는 누가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지 단번에 인식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어떻게 해야 스즈키 부사장한테 이 사실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내 이상한 능력을 말해봤자, 미친놈 취급을 받을 테고.

하지만 최근 몇 달간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에도 누가 또 무엇이 문제인지 확실해.

마루나카 쇼텐하고 오가와 부장/후쿠야마 대리가 내통하고 있는 거야. '


수학 공부는 어떻게?


켄타로는 고등학교 때 수학 공부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수학에 재미를 느꼈던 그였으나 수험 준비를 하는 입장에서 시간이 부족했다. 수학 문제 하나를 가지고 씨름하다 보면 어려운 문제는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휘익 지나갔다. 그렇게 풀어내면 진한 희열이 느껴지고 수학 능력이 한결 깊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고1 때나 이야기고, 고2부터는 해야 할 공부량이 너무 많아져서 수학에만 무작정 시간을 쏟을 수 없었다. 철저하게 시간을 배분해서 전체 과목을 골고루 학습해야만 했다.


그래서 고2 때부터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즉, 수험 과목으로서의 수학을 공부하는 데 시간을 좀 줄이기로 했다.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서 가능하면 스스로 답을 찾되,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 문제는 해답과 풀이를 보고 그 문제를 푸는 과정을 익히는 방법이었다.


승부욕이 있는 그였기에 처음엔 이런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때부터 대입 본시험을 치르기까지는 철저히 수험공부 모드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번 요코하마 공장의 문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미 과정과 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풀이 과정(문제가 진행된 과정)을 이해하고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만 알고 있는 범인들의 정체와 그들의 잘못을 제대로 알리고 밝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계속)



* '죄를 읽는 남자' 전체 읽기

https://brunch.co.kr/magazine/readsin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