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가현 카라츠 항구

by 안드레아
윤슬이 빛나고 있는 카라츠부두의 바다

날씨가 이상한 하루였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었지만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비는 이미 그친 상태였다.


태양이 보이긴 했다.

하늘이 뿌연 것이 평소 즐겨 입던 파란 옷을 빨래통에 던져 놓았나 보다.


동료 둘과 차로 두 시간 반 걸리는 사가현의 카라츠 항구로 향했다.

한 사람은 삼십 대 중반

또 한 사람은 사십 대 중반

세 번째 사람은 오십 대 중반

모두 남자다.


"오늘 날씨가 이상하네요. 해는 났는데 하늘이 맑지가 않네요. "

내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 그러네요 "

삼십 대가 맞장구쳤다. 싹싹한 편이다.


" PM 2.5라지요? 아마? "

오십 대가 뉴스에서 들은 이야기를 보탰다.

(PM 2.5: 일본에서 미세먼지를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미세먼지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다.)


왼쪽 하늘에 수많은 갈매기들이 비행중이었다.
DSC_0384.jpg


카라츠 항구에 도착했다.

뻐근한 몸을 일으켜 차 밖으로 몸을 빼내었다.


구름도 끼고 미세먼지도 낀 하늘이지만

왠지 아늑하고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직사광선이 내리쬐지 않는 해가 비치는 날.


바다는 잔잔했고 평화스러웠다.

무엇보다 온화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부서지는

윤슬이 자꾸만 눈길을 앗아가는 거였다.


부둣가에 쌓인 고철더미를 관찰하는 한편

항구의 전체적인 모습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사진도 틈틈이 찍었다.


눈을 좀 더 먼 곳에 두자

저편 하늘로 무수히 많은 새떼들이

공중에서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가며

어지러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갈매기떼와 더불어 아마도 다른 종류의 새들이

함께 비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바다와 항구 그리고 뒤편에 걸쳐 있는 산 풍경을 보면서

어릴 때 봤던 이현세 씨의 '해왕도의 비극'이라는

작품이 문득 떠올랐다.



동료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식당을 찾지 못하고 우리는 체인 레스토랑에서 한 끼를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시간이 조금 남아 식당 주변 동네를 한 바퀴 거닐었다.

우리 동네도 그리 번잡하지 않은데 이 동네는 더 한적하고 시골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현대식 새시 창이 아니라 목조 가옥에 나무 창틀, 슬레이트에 기와로 만들어진 집들이

보였는데, 이런 예스러운 집들을 보면 이상하게 아련한 향수와 같은 감정이 스민다.


일본의 집들은 작은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꾸며 매우 깔끔하고 앙증맞은

화단을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이 동네에도 그런 집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푸른색 담장 위로 붉은 가지가 삐죽삐죽 솟은 게 보였다.

뭔가 이상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이었다.

일본 만화 가운데 '기생수'라는 작품이 있는데

모양은 기생수와 달랐지만 갑자기 그 촉수가 떠올랐다.


조금 더 거닐다 보니 일반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대중온천탕이 있었다.

정면 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男, 오른쪽은 女라고

쓰인 목욕탕 입구가 보였다.

참 정겹기도 하고 구수한 느낌이라고 할까.

시간이 좀 났으면 동료들과 그곳에서 함께

목욕이나 하고 갔으면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가운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문득 떠올리게 될 것 같은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길을 가는 내 눈에 유독 밟히는 붉은색 나뭇가지들.
허름한 대중온천탕이 정겹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