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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r 18. 2017

그때, 진해 아가씨 이야기 1편

서울구경 가는 기차 안에서

[1971년 어느 날]


 언니를 꼬셔서 드디어 서울행 기차를 탔다. 서울에 갔다 온 가스나들이 어찌나 자랑을 하는지...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서울은 정말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다.


  난 돈 모아둔 게 없었지만 언니는 용돈을 받으면 안 쓰고 늘 저축을 해두었기 때문에 꽤나 큰돈을 모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주일 전] 


 " 언니야, 니 서울 안 가고 싶나? " 내가 언니의 눈치를 살피며 자기 직전 타이밍을 골라 불 꺼진 방에서 물었다.


 " 와? 니 와 그라는데? 또 무슨 망상을 하노? " 이미 요를 펴고 일자로 쭈욱 반듯하게 누워 이불을 목까지 덮은 언니가 눈을 감은 채 응수했다.


 " 아이, 망상이 아이고 니 진수이 알재? 그 가스나가 지난주에 서울 놀러갔다왔다 아이가? 진수이 삐 아이다. 저번 달에 갱미하고 미자도 놀러 갔다. " 언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지만 내 이야기는 틀림없이 그녀의 귀에 꽂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이야기도 아니고 서울 얘긴데 지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반응이 없을까.


 " 내 친구 영서이도 얼마 전에 갔다 왔다. 삔 하나 사가 와서 선물 주드라. " 언니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럼 그렇지. 지도 서울 갔다 온 친구들 이야기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거지. 니, 딱 걸맀다. ㅎㅎㅎ  


 이참에 언니를 확실히 설득해서 필히 서울구경을 한 번 가기로 마음을 궂히는 순간이었다.


[서울행 기차 안]


 몇 주 동안 밤이고 낮이고 얼굴 보면 조르고 어르고 달래기를 반복한 끝에 언니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기차표도 언니 돈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가는 동안 기차 안에서 파는 맛있는 간식도 눈치 보면서 언니한테 사달라고 할 요량이었다.


 이번 서울 여행은 1박 2일에 그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이게 어딘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서울구경을 갈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지 않았는가.


  초록빛 벨벳 비슷한 재질로 된 기차 좌석의 등받이에 가만히 등을 밀착시켜 기대어 보았다. 느낌이 아주 새로웠다. 창밖을 반복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전신주며 논밭의 풍경도 좋았고, 조금 눈을 들어 올려다보면 이내 눈을 맑게 해 주는 파아란 하늘과 드문드문 걸쳐 있는 구름들도 보기 좋았다.


 조금 있다가 카트가 지나가면 빨간 망에 든 삶은 달걀도 사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생일상 받은 어린아이처럼 마냥 들뜨고 기분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객실을 둘러보았다. 다들 서울까지 가는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걸 보면 사는 게 괜찮은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중에 형편이 좀 괜찮아지면 자주 이렇게 기차 타고 서울이든 어디든 여행 다니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해 보았다.


 " 언니야! 좋재? 내하고 서울 가기로 한 거 잘 생각했재? " 옆에 앉아 있던 언니 쪽을 쳐다보며 나는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그래. 니 때문에 이래 또 서울도 가보네. "  언니는 나처럼 격한 흥분을 표하지 않았지만, 얼굴 전체에 흐르는 미소와 호의적인 말투에서 그녀 또한 많이 설레고 들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승무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저, 죄송하지만 어떤 분께서 두 분을 식당차로 잠시 모셔달라고 부탁하셨어요. "


" 네? 누가요? 누가 우릴 불렀어요? "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승무원 아가씨한테 반문했다. 언니도 사뭇 놀란 표정으로 나와 승무원을 바라봤다.


" 저도 정확히 누구신지는 잘 모르겠는데 군인인 것 같아요. 두 숙녀분을 식당차로 모시고 싶다고 정중히 말씀하셨어요. " 승무원은 아마도 경상도 사람이 아닌 듯했다. 말투에 사투리가 섞여 있지 않았다.


" 그래요? 어떤 남자가 우리 밥 사준다케요? 와, 누군지 모르겠지만 땡잡았네. 히히. " 기차 식당칸으로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그 남자가 대체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빨리 식당칸으로 가서 무슨 메뉴가 있는지 보고 싶었다.


" 야! 니 미칬나? 누군 줄 알고 덮썩 따라갈라카노? " 언니가 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 아가씨, 그 아저씨한테 전해 주세요! 모르는 사람하고 같이 밥 먹을 수 없다고요. " 언니가 승무원에게 이어 말했다.


" 언니야! 뭐 그리 까탈스럽노? 밥 사준다는데 가서 보고 그냥 먹고 오자! 니 싫으면 나 혼자 갔다 오께! " 

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는 여승무원을 따라 식당칸으로 향했다.


 잠시 후 식당차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섰을 때, 눈에 확 들어오는 남자가 한 사람 보였다. 오후의 강한 햇살이 들이치는 창가 테이블 좌석에 앉아 있던 그는 새하얀 제복 차림이었다. 딱 보기에도 군인이었고 제복의 종류로 미루어 보아 해군 장교로 여겨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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