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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r 19. 2017

그때, 진해 아가씨 이야기 2편

그 남자


[1971년 서울행 기차 식당칸]


" 아즈씨가 우리 불렀어예? " 하얀 제복을 입고 머리는 위로 바싹 쳐서 올린 군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근데 이 양반 얼굴이 완전 아프리카 사람 같이 까맣다.


" 아, 안녕하십니까? 일단 좀 자리에 앉으십시오.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ㅎㅎㅎ " 어깨 위 계급장에 다이아몬드가 양쪽으로 세 개씩 박힌 그가 검게 그을린 얼굴에 미소를 한아름 지은 채 말했다.


" 아즈씨, 해군인갑네? 근데 얼굴이 와그리 까매요? 옷은 새하얀데 얼굴이 그리 깜상이라 억수르 튄다 아임니꺼. ㅎㅎㅎ " 


" 아, 저 실은 월남전 갔다 와서 그렇습니다. ㅎㅎ 점심 식사 하셨습니까? 전 아직 못했는데 괜찮으면 같이 드시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제일 맛있는 걸로다 사드리겠습니다. "


" 우리도 아직 안 무읐으요. 근데 우리 언니 안 온대요. 아즈씨, 우리 언니한테 관심 있어 부른 거 맞지예? "  군인 아저씨가 식당차에서 뭘 사줄지도 기대가 됐지만 이 사람이 우리를 부른 이유가 궁금해서 대뜸 물어 물었다.


" 아, 옆에 계시던 분이 친 언니십니까? 그러고 보니 두 분이 닮으신 것도 같습니다. 하하. 아참,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해군 대위로 복무중인 이태은 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 


 우리는 이렇게 첫 인사를 나눴고 예상치 못한 인연이 서울행 기차 안에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 인연이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갈 수십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식당차에서 사준 경양식 돈까스는 내가 어른이 되어 먹어 본 음식들 가운데 단연 최고로 맛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며 마지막 한 조각을 아쉬운 맘으로 입속에 집어 넣었다.


" 와, 원래 기차 음식이 이리 맛있으요? 진짜 맛있네요. 언니는 이리 맛있는 것도 못 얻어묵고. 언니랑 저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ㅎㅎ 언니 저거는 에이형이고 나는 오형이라서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스타일도 완전 딴판 아임니꺼. "


" 아, 그렇구나. 혹시 형제가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3남4녀 중에서 다섯째고 위로 형이 두 분, 누이가 두 분 계십니다. 밑에는 여동생들입니다. "


" 우리는 2남3년데, 제일 우에가 오빠고 제일 아래 막내가 남동생 아임니꺼. 중간에 아까 같이 있던 언니, 나 있고 밑에 여동생 하나 있습니더. "


 우리는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호구조사도 대충 마쳤다. 이 남자는 충청남도 출신인데 원래는 일반 대학교를 다니다가 가정 형편이 어렵고 뜻하는 바가 있어 해군 사관학교에 지원하여 장교가 되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는 햇살이 환히 빛나던 하얀 해군 제복이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으로는 마치 옻칠한 새카만 장처럼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빛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흘끔흘끔 그의 생김새를 뜯어 보니 움푹 들어간 눈에 쌍거풀이 또렷했고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일 만큼 볼살이 빠져 깡마른 얼굴이, 다부지고  사내다운 매력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돈까스를 맛나게 얻어 먹고 후식으로 사이다까지 빨대에 빨아 쪽쪽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셔 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언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 남자는 그렇게 조바심을 내는 것 같지 않았다. 제법 말주변이 좋아서 그 자리에 앉아 한 시간 반인가를 떠들며 시간 지나는 걸 잊게 해 주었다.


 " 저기요 아즈씨, 저 이제 언니한테 가볼라케요. 언니가 걱정할 꺼 같아서예. " 맛있게 먹고 시원하게 마시고 자리를 뜨려 하니 조금 미안해진 내가 자리를 뜨는 이유를 갖다붙여 말했다.


" 그러십시오.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았습니다. " 그가 정중하나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요. 너무 잘 얻어묵고 호강했어예. ㅎㅎ 대전에서 내리신다켔지요. 일 잘 보고 가세요. 아즈씨." 언제 또 볼지 모를 남정네한테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넸다.


" 아참, 저기 혹시 진해 다시 돌아가면 제가 백장미 제과에서 주말에 언니 분하고 같이 초대해서 맛있는 걸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으면 집 전화번호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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