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대하는 시각
시련이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요새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소노 아야코 작가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서 이와 관련한 문장들이 좀 나온다.
덕분에 최근 몇 달 동안 겪고 있는 직장에서의 어려움과
특히 오늘 젊은 직장 상사와의 갈등 상황에서
나는 엄청난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희한하게도 긍정적인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어쩌면 오늘 일로 나는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련의 모든 상황을 옆에서 거의 다 지켜보고
나를 응원해 주고 있는 직장 후배가
통화를 끝낸 나를 측은하지만 애정 어린 눈빛과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넨다.
이상하게 마음이 담담하다.
어렵사리 일본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와
얼추 4년의 세월 동안 겨우 적응을 했다 싶은 순간에
다시금 기로에 서게 되었다.
솔직히 두려운 마음도 있고,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귀찮음과 부담감은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이런 고민도 한 서너 달 하고 있으려니
이력이 생긴 걸까. 맷집이 좋아진 걸까.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난 오늘
샤워를 하고 잠이 들기 직전인 지금
나의 마음은 오히려 편안한 느낌마저 인다.
오늘은 곁에 한 명의 직장 후배와
두 명의 외국인 손님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통화는 약 삼십 여분 동안 고성이 오가고
치열한 논리공방이 있었으며
감정적인 공격과 소모전이 이어졌다.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이 그 통화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비록 중간에 자리를 피해 나오긴 했지만
이미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상황이라
밖에서 이어간 통화 내용이나 분위기가
대부분 동석한 사람들한테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참 좋아졌다.
왜냐하면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우리들의 불안한 미래를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땅바닥에 툭 굴러 떨어져 흙탕물이 튀겼던
내 마음은 조금씩 본래의 색깔을 찾을 수 있었다.
늘 평화를 갈구하며 살지만
역설적이게도
참된 평화의 의미를 알기 위해
내게 시련의 순간들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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