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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기를 지나치게 꺼려하는 동료와 일하기

키타큐슈 이야기 제 15화

by 안드레아

책임지기를 지나치게 꺼려하는 동료와 일하기


*장소: 일본 후쿠오카현 키타큐슈 스텐레스스크랩/철스크랩 수출회사 본사


*등장인물

나: 수출입 책임자, 무라이상: 해상 운송, 선적 서류 담당자

나 왈, “ 아 그러니까 Stowage Factor가 어떻게 2.0이 나온 거냐구요? 지난 해만 해도 대만에 우리 물건 팔 때 1.8로 진행했었잖아요!”


무라이상 왈, “ 1.8로 했던 건 제가 잘 기억이 안 나구요. 우리 물건은 2.0으로 진행해야 안전합니다 “

나 왈, “ 그렇게 높게 잡으면 안전한 거야 안전하지만 운임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잠깐 기다려 주세요. 제가 2층으로 올라갈 테니. 직접 보면서 얘기하기로 해요.”




▶참고 Stowage Factor (적화계수 積貨係數])

1톤의 화물을 선적했을 때, 그것이 차지하는 용적을 입방 피트로 나타낸 수치.

*Stowage Factor = 물건이 차지한 용적/ 물건의 무게

어떤 화물이 1톤(Metric ton)의 화물을 구성하는데 몇 Cubic Feet (참고로 표준이 되는 "물"인 경우 1 CBM = 1 MT이며 1 CBMdms 35.3147 CFT(Cubic Feet)입니다) 가 되는지 경헙적으로 적어 놓은 것을 말합니다. 이는 대량화물( Bulk )벌크화물을 수송할 때 본선이 중량으로 얼마를 싣고 부피로 얼마를 실을 수 있는지 계량하기 위해서 입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곧장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무라이상이 미소는 지었지만 약간 긴장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내가 말한다. “ 무라이상, S/F(Stowage Factor)를 2.0을 잡는 건 너무 높은 거 아닌가요? "


무라이상 “ 실제로 그 정도 나와요. "


나 “ 불과 6개월 전에 나랑 대만에 물건 수출할 때 S/F가 1.8이라고 해서 진행한 거 기억 안 나요? "


무라이상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 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1.9~2.0은 잡아야 안전합니다.”


나는 얼굴이 굳어졌다. 아쒸… 속으로 욕이 나온다.


나 “ 무라이상 아까도 전화로 얘기했지만 안전하게 잡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러면 운임이 지나치게 많이 나와요. 우리 다 해본 거잖아요. 몇 번 씩이나, 바로 지난해에. 대.만.으.로!”


나 “ 2.0이라는 수치는 어떻게 나온 거예요? 계산해 봤어요? 누가 알려주던가요? “


무라이상 “ 그걸 제가 어떻게 계산해요? 전에 있던 직원이 쭈욱 쓰고 저한테 알려줬던 수치를 쓴 거죠. "


나 “ 무라이상보고 계산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2.0이라는 수치가 도대체 어떻게 해서 나온 건지 궁금해서 여쭤본 건데 계산한 것도 아니고 선박회사에서 알려준 것도 아니고 그냥 이전 담당자부터 써왔던 거라구요? "


약 20여 분을 서툰 일본어를 구사하며 똑같은 얘기를 자꾸 반복하니까 언성이 올라갔다. 얼굴도 상기되었음에 틀림없다. 시침은 12시 15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점심 먹을 시간인 것이다. 옆자리의 여직원 셋이 식사를 하며 우리 남자 직원 둘의 핏대높인 설전을 듣고 있었다.


여간 해서 언성이 올라가지 않는 일본인들인데 내가 갑자기 2층 사무실로 들이닥쳐 앉자마자 유창하지도 못한 일본어를 구사하며 따지자 무라이상은 상당히 긴장한 눈치였고 자기 방어에 들어갔다.


무라이상은 호신술 강사를 할 정도로 평소 무예를 깊이 갈고닦은 사람이면서 업무상 갈등이 없을 때는 아주 유쾌하고 기분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본인의 책임 문제가 조금이라도 걸리면 너무 몸을 사리고 본인이 하나도 책임지지 않아도 될 만큼만 말하고 일하려 하는 습성이 있다.


누구나 책임을 굳이 필요 이상 더 많이 떠안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지나치게 보수적 입장으로 일하면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최적화된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워진다.


무라이상과 내가 부딪히게 된 우리 회사의 수출 물건, 철스크랩의 Stowage Factor의 경우, 업계 통상적으로 1.5~1.6으로 본다. 즉 1톤을 선적하는데 부피가 1.5~1.6 입방피트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는 보수적으로 1.8로 잡아서 사용했었다. 그런데 해상운송 담당자인 무라이상은 지난해 나와 함께 1.8 정도로 진행한 걸 까맣게 잊고 2.0으로 진행하여 선박회사로부터 해상운임 견적을 받은 것이다. 1.8도 보수적으로 접근한 것인데 이보다 더하여 2.0으로 잡고 더 비싼 운임 견적을 받은 것이다.


나 “ 무라이상, 내가 왜 이렇게 끈질기게 이 문제를 붙들고 있는지 아세요? 저도 2.0으로 하면 안전하고 편하다는 거 알아요. 근데 왜? 그건 우리 회사의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1.8로 해도 충분히 괜찮았어요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


무라이상은 언성이 높아진 나에게 조금 진정하라고 부탁한 뒤, 여직원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자리를 떠나 옆방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알았다고 하고 우리는 옆 작은 방 사무실로 옮겼다. 그리고 나는 아까 했던 이야기를 다시 차분히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이제 무라이상도 내가 왜 핏대를 올려가며 이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하는 눈치였다.


나 “ 제 이야기는 이상입니다. 무라이상도 저한테 더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주세요. 아참, 저의 일어가 서툴러서 의사소통에 무리가 있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대화가 답답하다고 해서 곧장 한국어가 가능한 다른 직원한테 도움을 요청하지는 말아 주세요. 제가 느끼기에 매번 그렇게 하는 건 무라이상이 자기 책임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요. 좀 힘들어도 저랑 더 많이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더 열심히 일어 공부해서 같이 일하는 분들 덜 힘들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무라이상 “ 알겠습니다. 훈주상의 입장 이해했습니다. “


우리 두 사람은 자리까지 옮겨가며 무려 30분 이상을 할애하며 조금 격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의도적으로 무라이상의 눈을 정면으로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는데 나보다 여섯 살 연상인 이 일본 남자 직원도 도전적인 눈빛으로 줄곧 대응하며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불꽃이 이는 것 같았다. 마치 한일 자존심 대결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잘못된 것을 정당히 지적하는 입장이었기에 그의 도전적 눈빛이 조금은 가소롭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강한 어조로 다그친 게 아닌가 싶다.


내 자리로 돌아온 나는 생각에 잠겼다. 과연 내가 잘 한 것인지.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 것인지. 동료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는 없었는지. 나보다 연장자인 그가 다른 여직원들 앞에서 한국인 동료한테 비판을 받은 것이 어쩌면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오후 일을 하고 있던 중 메신저 문자가 들어왔다. 아내였다. 연락해온 아내에게 이 정황을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의 반응이 흥미로왔다.


아내 “여보, 난 당신이 이제 곧 라인으로 사과 문자를 보낼 거라는 걸 알아 ㅋㅋㅋ “


아, 이 여자는 이미 나를 파악하고 있다. 실은 아내와 이 이야기를 나누기 직전에 나는 이미 무라이상에게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나의 문자,

‘무라이상께. 오늘 여러모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오늘 제가 조금 감정적이었는데 앞으로는 더 나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


약 45분 뒤에 답신을 받았다.


무라이상의 문자

‘ 저도 좀더 훈주상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둘은 문자와 더불어 하트가 들어간 큼지막한 라인 스티커도 서로 하나씩 보내주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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