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나 섬과 미시간 호수
폴더에 소중히 정리해 놓은 사진들을 오랜만에 꺼내어 본다. 거참 파랗고 눈이 푸르도록 맑아서 좋다.
미시간의 매킨나 아일랜드. 3년 전 미시간에 사는 친구네로 놀러 간 것이 첫 미국 방문이었다. 어찌나 들뜨고 신이 나던지. 당시 나는 일본 큐슈섬 북단 키타큐슈에 살고 있었고 서울에 사는 다른 친구 부부와 동행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세 나라에 따로 떨어져 살다가 중학교 졸업 후 미시간에서 처음으로 뭉치게 된 셈이었다.
9월의 우리나라도 무척 상쾌하고 좋지만, 미국 미시간의 9월은 나와 서울 친구 부부에게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신선함 자체였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는 맑음을 넘어서 단 내음을 느끼게 만드는 듯했다.
필터를 벗겨낸 것 같달까 색안경을 벗어던진 느낌이랄까.
갑자기 내 눈의 시력이 좋아진 것일까.
아무튼 눈을 뜨고 바라보는 곳이 모두 그렇게 선명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매킨나 섬을 에워싸고 있는 물이 잔잔했다.
날씨가 명품이었기 때문에 햇살이 부딪혀 만들어진 잔잔한 물결은 투명하고 가벼웠다.
윤슬이 반짝이는 모습은
한낮의 물하늘에 걸린 밝은 별빛과도 같았다.
섬의 가장자리. 절벽에 이르러 가슴을 뚫어 놓는 풍경은 말을 잊게 했다.
정말 이것이 호수의 풍경이라는 말인가.
파란 물감을 풀어도 어쩌면 이렇게 어여쁜 색으로 물들 수 있을까 했다.
세상은 넓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마주하면 그 흥분은 나를 새로운 인간으로 탈바꿈시킨다.
그 느낌을 기억하기에 미지의 세상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2년 반 전의 내 모습을 또 하나의 내가 본다.
그도 나이지만 지금의 나는 그가 부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며,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에게서 우정과 연민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소박하고 깨끗한 숙소의 단조로운 밤이었다.
마치 메인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는 어떤 미국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호텔처럼 느껴지던 곳.
푸르스름한 어둠이 지배하던 조용하고 적막한 해안가 아니, 호숫가.
바람은 꽤 매서웠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좋을지 모른 채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함께 하던 호숫가의 저녁.
유원지에 그렇게 사람이 없을 수가 없었다.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한산했던 마을.
북적이는 사람들도 흥을 돋울 때가 있지만,
이렇게 텅 빈 느낌이 싫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백이 있던 그 공간이 또렷하게 떠 오를 것만 같다.
분주함으로 하루하루를 빼곡히 채우고 있노라면
약간의 게으름과 여백의 시간을 보내던 그때가 아득하게 먼 이야기만 같다.
그때의 친구들과 여전히 연락이 닿지만,
그때와 지금은 같지 않다.
그립고 소중하지만 지금은 그냥 떠 올릴 시간이다.
그렇게 지내다가 언젠가 때가 오면,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고,
추억의 나이테는 하나 더 늘어나겠지.
오늘 점심시간은 신우회와 함께 했다.
고요한 회의실 하나를 빌려 성서를 읽고 묵상을 했다.
침묵이 공기가 되어 우리와 함께 하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분주하고 압박감 느껴지는 일상 가운데서
마치 시간을 잠시 멈추는 마법을 부린 듯한 시간.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