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Oct 12. 2018

홍콩의 퇴근길 풍경


가.


이층버스를 타고 퇴근을 한다

이층 맨앞칸에 앉아 통유리 너머로

밤의 홍콩을 구경한다


그 자리는 딱 네 자리인데

이층에 사람이 차기 시작하면
금세 사라지는 1등석이다


하루의 두서없는 일정이 끝나고

높다란 버스에 몸을 실은 채

불빛 밝은 거리를 지나는 시간은

소박하고 평온한 선물이다



나.

무언가 칼칼한 음식이 당기는 저녁

잠시만 고민하고 라면을 꺼낸다

한 개는 언제나 부족하므로

달걀 두 개 넣고 이미 반 먹고 남은

꼬마만두 다섯 개를 빠트린다


신맛 나는 자두 두 개와
자두만한 크기의 사과를 썰어

반찬을 대신한다


다.


서울의 기온이 뚝 떨어져 춥다고 하는 오늘

홍콩은 살랑이는 가을바람에

저마다 미소에 가벼움 가득하다


출근했던 복장 그대로 바닷가 산책로를 거니는데

나만 빼고 대부분 운동복 차림이다

무슨 상관이랴

나는 오늘 뛰지 않고 유유히 걷기만 할 테니까


흉폭했던 태풍이 할퀸 자국이

흉터로 남아 발길을 멈추게 하지만

바다는 너무도 잔잔하고

밤하늘은 고요하기만 하다


라.


사는 일이 오늘 저녁과도 같다면

참 좋으련만


그것 참


싫어도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지만

정신이 깨면 상쾌하고 괜찮은 아침과


자유를 속박하고 노동을 요구하지만

또 무언가 끊임없이 소란이 이는 낮 또한


내가 살아내고 있는 삶과 닮아 있는 거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니겠나


태풍의 상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