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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Oct 29. 2018

광저우 류화후(流花湖) 공원

생각이 나의 뇌에 달라붙어


 홍콩에서 지치는 한 주를 보내고 이주 만에 가족을 만나러 광저우로 향했다. 고속철이 생겼으나 예매가 늦어 심천만 국경을 통과하는 버스편을 이용하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 7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완차이를 출발한 버스는 사람과 불빛으로 번지는 도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심천에서 수속을 마치고 중국령 안으로 들어와 버스를 갈아탔다. 심천만에서 서쪽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매우 단조롭고 지루한 길이었다. 게다가 어둠이 내리깔린 고속도로는 시각적으로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이처럼 고요하고 적막에 싸여 있었지만 내 머리와 가슴의 세계는 정반대였다. 회사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 그리고 그로 인해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로 인해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평소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한 주 동안의 일을 마치고 가족을 만나러 돌아가는 금요일 저녁 귀향길이 얼마나 마음 편하고 가벼웠을까. 그러나 이날만큼은 생각이 나의 뇌에 달라붙어 강제로 떨어트려 놓아도 다시 붙고 다시 붙어서 멀미가 나려 했다.



 버스는 10시 45분이 되어서야 광저우 시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깝고 소중한 금요일 저녁 시간은 그렇게 흩어져 버렸다.


류화후(流花湖) 공원


 광저우에 4년이나 살았었는데 이곳은 첫 방문이었다. 머리는 전날에 이어 아직 산란했지만, 공원의 정갈한 풍경과 광저우의 시월말 선선한 공기가 기분전환을 시켜 주었다.   


 중국의 거리를 거닐거나 공공시설을 가 보면 참 좋은 곳들도 많은데 조금 부족함을 느끼곤 했다. 그것은 길바닥이나 건물 외벽에서 느껴지는 청결도의 차이에서 부각되곤 했다. 개인적인 느낌은 살아 보았던 일본과 우리나라 그리고 중국의 순서로 청결함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그런데 류화후 공원에 들어서 보니 중국이 많이 달라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호수와 나무, 풀, 시설물의 배치 등 조경의 수준이 남달랐고, 길바닥과 시설물의 표면에서 오는 느낌도 상당히 깔끔하고,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느껴졌다.


 호수를 따라 무심히 걸었다. ' 무더웠던 광저우에도 가을의 선선함이 찾아오긴 하는구나. 후쿠오카의 오호리 공원 호수는 커다란 호수 주위를 마치 큰 트랙처럼 만들어 놓았었는데 여기 류화후 공원은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이 많구나.'


 공기가 깨끗한 나라의 선명하고 몽환적인 저녁놀을 이곳에서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걷다 보니 해가 옆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키타큐슈에서 살 때 퇴근할 무렵 날씨가 좋은 날 이렇게 태양빛이 옆으로 비치면 참 근사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리 기대하지 않고 간 류화후 공원에서 오랜만에 그 느낌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강수량이 풍부하고 사계절이 늘 덥거나 따뜻하거나 온화한 이 남쪽 나라. 그래서 나무들은 마음껏 뿌리를 뻗고 가지를 펼치며 이파리들을 무성히 거느린다.


 물 주위로 자리잡은 나무들이 치렁치렁 줄기를 내려 호수에 닿을 듯 말 듯한 풍경은 어디에서 보아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더구나 가을 하늘의 온전함이 돋보이는 날엔 호수가 은은한 거울이 되어 이 놀랍고 아름다운 그림을 두 배로 화폭에 담아내는 걸 마음 속으로 감탄하며 바라본다.


 근심이 어려 숨기지 못하는 나에게 그 시간은 예비된 일정이었을까. 꼭 필요한 순간에 늘 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해 주는 이 모든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삶의 배려이자 내가 거저 받곤 하는 선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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