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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an 30. 2019

그때 그 감성

연애시대

 2008년 중국 광저우에 처음 주재원으로 나갔을 때다. 당시 한국 텔레비전 방송을 볼 수 없어서 DVD를 중국 시장에서 값싸게 구입해 한국, 일본 혹은 중화권 드라마나 영화를 보곤 했다. 그 전까지 한국 드라마나 미드 따위를 한 번에 몰아서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 이런 즐거움을 알게 되자 그동안 놓쳤던 작품들을 실컷 찾아 감상할 수 있었다.


 손예진과 감우성이 주연을 맡았던 연애시대라는 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 같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손예진이라는 배우에 흠뻑 빠져버린 시점이.


 이야기는 부부였던 두 사람이 이혼한 이후부터 시작된다. 어떤 이유로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비록 이혼한 사이이기는 하나 두 사람은 지속적으로 연락이 닿는다. 각자 직장을 다니고 각자의 인간관계가 독립적이지만 두 사람은 자의와 타의, 우연과 필연이 엇갈리며 끊이지 않는 관계를 이어간다.



 대개 이혼한 부부가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큰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있을 경우다. 하지만 이 헤어진 커플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는 한 회, 한 회를 거듭하면서 그 이유를 짐작케 하고 이해하게 하고 공감하게 하며 가슴을 저미게 한다.


 살면서 그 사람한테 마음이 있지만 표현은 반대로 까칠하거나 틱틱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가공의 스토리인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자주 있는 설정이지만, 실제로도 그렇게 속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는 지인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솔직히 머리로는 이해한다 생각하지만, 마음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감우성이 분한 동진이 은호(손예진)에게 이런 태도를 보였는데 작품을 감상하면서 어느새 동진의 마음을 가슴 미어지도록 공감하게 되었다. 마음은 이 세상 누구보다 그녀를 아끼고 애틋하게 여기지만, 차마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서는 안 되는 상황. 그랬다가는 그토록 소중한 그녀를 더 힘들게 하고 깊이 상처입힐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동진은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스토리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 어, 이건 아닌데.. 동진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다니.. 은호가 너무 가엾다...' 이런 생각이 간절히 든다. 왜냐하면 우리도 어느 순간 이미, 헤어진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느껴버리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가지 일정과 개인 약속들로 인해 매일 늦게까지 바쁘게 지내다가 갑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책을 읽을 생각이었는데 무심코 텔레비전을 켰다. 홍콩 텔레비전 채널 가운데 한국 드라마만 계속 서비스해 주는 곳이 있다. 화면이 열리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배우들의 얼굴과 복장으로 봐서는 수 년 지난 드라마로 보였다. 딱 40분 정도를 시청했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등장인물의 성격과 관계가 금세 포착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몰입되었다.


 드라마란 이런 것일까. 한동안 메마르고 중립적이었던 감성을 스프링쿨러로 물을 주듯 단시간에 흠뻑 젖어들게 만든다.


 연애시대를 처음 감상하고 약 10년이 지났다. 처음 접한 것도 이미 상당히 늦은 때였다. 이제 다시 한 번 그 명작을 찾을 때가 된 것 같다. 선상에서 전 남편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송을 부르게 되어버린 한 여인의 오미자같은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예진은 단연 최고의 배우이다.



* 본문의 이미지는 포탈 사이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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