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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Apr 09. 2019

광저우 루후(麓湖) 공원

 홍콩에서 퇴직 절차를 밟고 일주일 정도 광저우에 머물렀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보내고 평일이 되자 혼자만의 시간이 났다. 이미 초여름 날씨가 되어버린 광저우에서 어디를 가면 좋을지 생각하며 구글 지도를 넓혔다 좁혔다 하며 목적지를 물색했다. 중국에서 개통한 스마트폰으로는 중국 본토 안에서 구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데 홍콩에서 쓰던 번호는 신기하게도 가능했다.


뇌의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기억들


 2008년 중국 광저우에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아 처음 해외 근무를 시작했던 기억이 떠 올랐다. 당시 우리 사무실은 '환스동루'에 있었는데 언젠가 지사장님이 주재원들을 데리고 이 루후 공원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사 주신 적이 있다. 호숫가 바로 옆에 있던 유일한 레스토랑으로 상당히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중국 음식점이었던 걸로 인상에 남아 있었다. 그때가 벌써 11년 전의 일인데, 첫 해외 근무 시절의 일상은 완전하지 않으나 문득문득 뇌의 바다 위로 또렷이 솟아올라 추억과 감성의 시간 안에 잠시 머물게 한다.

 언제 어디를 가도 사람들로 득실대는 광저우 시내 평균의 모습과 사뭇 다른 공간과 마주했다.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는 키타큐슈의 저수지나 공원에 비해서는 그래도 산책을 나왔거나 돗자리를 펴고 오수를 즐기는 사람들이 좀 더 보였지만 이곳은 인구 1,400만의 광저우가 아니던가!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고 한적함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몸이 매여 있는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면서 늘 이런 홀가분함과 자유를 갈망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샐러리맨으로 살면서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며 꿈꾸고 벼르고 간절하게 바랐던 독립의 삶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과연 내가 막상 그러한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좋은 일만 있을까, 혹시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노파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공식적인 일정을 끝내고 출근을 하지 않게 된 이후임에도 삶의 관성은 이러한 불안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시간문제일 뿐이다. 나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새로운 삶의 패턴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 새로움과 함께 빚어지는 문제와 걱정거리들을 하나씩 잘 처리해 나갈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가 잘나서라기 보다는 인간 본연의 능력이 그러하다는 걸 살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글쓰기를 위해 좀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설레고 기쁘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에너지 수위가 매우 낮아져 글을 시작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이제는 일과 글쓰기 혹은 운동의 순서를 상황에 따라 앞뒤로 바꾸면서 가장 이상적인 패턴을 찾아보려고 한다. 창작을 위해서 매번 가장 머리가 맑고 개운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이제껏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걸 시도할 수 있게 된다니 감회가 남다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주 말하곤 하는 글쓰기에 관한 나의 목표는 소설 쓰기다. 펜이 가는 대로 쓰는 수필과는 성격이 많이 달라서 소설 쓰기는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써내려 가면서 줄곧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물론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작가들이 짧은 시간 안에 순식간에 많은 양의 글을 큰 어려움 없이 써내는 경우도 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역시 장르로 비교한다면 소설 쓰기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에너지 소모가 큰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몇 가지 제목과 주제로 소설 습작을 몇 년 동안 시도했으나 끝을 보지 못했다. 이제는 더 미루지 않고 이 가운데 하나의 주제 혹은 새로운 걸 선택해서 한 권의 완결된 작품을 생산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소설이 제대로 빛을 보고 난 뒤에는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와 드라마로 재탄생시키고 싶은 꿈도 오래전부터 품고 있다. 아직 한 권도 완결하지 못했으면서도 끊임없이 이러한 상상을 하고 꿈을 키워가고 있다. 지인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꿈과 목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일종의 의지 표현이며 스스로를 그 꿈과 목표에 구속시키기 위함이다. 나약한 나의 의지는 마음속의 품은 바를 말로 표현하고 자꾸 구체화시켜 주변에 공유함으로써 더욱 강해지고 단련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다음에 다시 루후 공원을 거닐게 될 때는 언제가 되려나. 모르긴 해도 가 보지 못한 곳들이 수두룩하니 다시 차례가 오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도 루후는 한적함과 고즈넉함으로 나를 맞이할 테고, 나는 또 다른 상념으로 호숫가를 음미하며 걷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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