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랄까 꼭 복고풍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드는 거지. 저녁까지 시간이 남는데 어딜 갈까 하다 남산 도서관엘 갔어.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마치 병풍으로 둘러쳐진 공간같이 아늑하게 느껴졌어. 건물이 낡았지. 이게 대체 언제 세워진 걸까 가늠해 보았어. 중간중간 보수공사도 했겠지. 여튼 낡고 바랜 느낌의 도서관인데 왠지 정이 가더라. 응, 그래! 구내식당이 있었어. 한 끼 식사에 4천 원에서 6천 원 사이쯤 했던 것 같아. 배가 고파서 카레 돈가스를 시켜서 아주 맛있게 먹었지. 구내식당은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제법 북적대더라. 평일 낮에 이렇게 오시는 분들은 무얼 하는 분들일까 생각하게 되더라.
밥을 먹고 나니까 일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할 의욕이 급격하게 반감됐지. 뭐, 어떻게 해. 자야지. 좋은 장소가 있었어. 주차해 놓은 차 안이지. 사무실이었다면 바로 이를 닦았을 텐데 칫솔도 치약도 없잖아. 이도 안 닦고 그냥 운전석에서 등받이를 뒤로 젖힌 다음에 낮잠을 청했어. 이날은 해가 나질 않아 낮에도 조금 서늘했어. 그러나 차 안은 아늑하고 포근했어. 내 공간이었어.
나무들이 꽃비를 내리고 있었어
반 시간 정도 잤을까? 카레의 여운이 남은 입안이 찝찝하고 느끼했지만 몸은 한결 개운해졌지. 문을 열고 나왔어. 주차장 바로 옆이 남산 올라가는 길과 닿아 있는 건지 이따금 줄을 이어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담소를 나누며 지나가는 게 보였어. 벚꽃잎들이 떨어져 바닥을 뒹굴뒹굴, 이리 쓸리고 저리 쓸렸어. 꽃잎들이 어디서 오는 걸까 하고 눈길을 들어 올렸어. 도서관 주변에 벚꽃나무들이 많더라. 나무들이 꽃비를 내리고 있었어.
일반차를 통제시켜 놓은 산길을 따라 산책을 시작했어. 천천히 천천히 그 시간을 음미하는 발걸음으로. 예전에 대우빌딩에서 일할 때 남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았어. 알잖아. 샐러리맨이 그런 거 쉽게 하지 못하는 거. 마음먹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야 겨우 급히 밥을 먹은 뒤에 짧은 산책을 하는 거지. 것도 멀리 정상까지는 시간이 안 되니까 못 가고 백범 선생상이 있는 곳 정도까지 다녀오곤 했지. 그러니까 꼭 18년~12년 전의 일상이야. 화석이 된 그날들의 기억을 앨범 사진처럼 떠 올리며 걸었어.
희망을 품은 따스한 날에 돌아왔어. 돌고 돌고 돌아 돌아왔어. 십 년 남짓 걸린 거네.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생각했어. 그날이 언제가 될지 정말 가늠할 수 없었지마는. 이렇게 성큼 다가온 거야. 때를 알 수 없었지만 예정되어 있었다는 느낌만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아. 감사함이 마음의 우물에 가득 고여 있어. 다시 이곳이, 이러한 날들이 일상이 되겠지마는 지금의 설렘과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