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살맞은 사람들 & 사귀고 싶은 사람들
1. 내 사랑 농구여 안녕
농구를 그만두고 테니스로 전향한 지 8년 되어간다. 테니스를 처음 배운 것은 1988년 - 그러고 보니 응팔이랑 같다 - 중3 때인데 고등학교 대학교 내내 그리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농구동아리에 들어가 2007년까지 약 20년 정도를 농구에 전념하느라 테니스를 잊고 지냈었다.
2008년에 중국 광저우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처음에 혼자 부임하여 쉬는 날이면 심심하던 차에 집에서 가까이에 있던 커다란 체육공원에 가서 중국 사람들 사이에 껴 농구 게임을 했다.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었지만 계속 운동을 한 터라 젊은이들에게 그리 밀리지 않고 나름 즐겁게 농구 경기를 하곤 했다.
그날도 한참 게임을 즐기고 있는데 옆 코트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소란이 커지자 우리 코트의 선수들 모두 경기를 중단하고 옆 코트를 주시했다. 옆 코트에서도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어느 순간 싸움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아마도 거칠게 몸싸움을 하다가 시비가 붙은 것 같았다.
한 사람이 상대팀 선수 하나에게 소리를 높여 항의를 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손찌검을 하기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몸을 밀치고 두 사람이 엉겨 붙더니 옆에 있던 멤버들이 합세하여 패싸움 양상으로 번졌다. 이건 뭐 치고받고 싸우는 패턴이 아니라 그냥 여러 명이 엉겨 붙어 처음 다투던 사람들은 제일 밑에 깔리고 그 위로 몇 겹의 사람들이 올라탄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마지막에 그 소란이 어떻게 수습되었는지는 지금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중국에서 농구하는 걸 포기하게 되었다. 괜히 객지에서 변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런 상황에 닥쳐서 혹시라도 외국인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운이 좋아 한 대라도 덜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감정이 격해진 그곳 사람들에게 더 심한 경우를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했다.
2. 테니스로 전향
그 뒤로 길거리 농구는 완전히 손을 뗐다. 대신 성당 사람들 가운데 테니스를 취미로 가진 분들이 많은 걸 알게 되어 실로 오랜만에 테니스장에 나가게 되었다. 한인 천주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주임 신부님도 테니스 고수여서 신자들과 자주 게임을 즐기곤 하셨다.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도 사내에 테니스 동아리가 있었지만 나는 7년에 걸쳐 겨우 2~3번 정도 나갔던 것 같다. 대부분 농구 동아리에서 농구를 즐겼던 것이다. 해외에 나와서 다시 접하는 테니스의 세계는 단시간에 나를 매료시켰다. 쾌적하고 넓은 코트에서 2명 내지 4명만 즐기는 이 스포츠. 라켓으로 공을 때리는 손맛이 잠자고 있던 나의 운동신경을 마구 자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일주일에 적게는 2번 많게는 4~5번 테니스장을 찾았다. 소위 내로라하는 강적들을 꺾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퇴근하는 시간이 너무 기뻤고 주말이 항상 기다려졌다. 테니스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던 것이다.
3. 테니스로 보는 성격과 인품
그런데 이 테니스란 스포츠를 즐기다 보니 그 안에서 사람들마다 갖가지 다른 행태와 매너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것이 테니스 실력에 따른 차별. 보통 테니스 실력에 따라 초보가 있고 동배조, 은배조, 금배조라고 하는 구분이 지어진다. 금배조는 보통 구력 10년 이상의 베테랑들로서 시합도 자주 나가고 코치들과도 짝을 지어 게임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은배조들은 그보단 못하지만 어디서나 게임을 즐길 수 있고 수준 높은 발리 플레이가 가능한 군이다.
테니스장에 나가면 좀 조직화된 동호회의 경우, 이 구분이 비교적 확연하여 고수들이 하수들과 상대를 잘 해주지 않는다. 어쩌다 사람이 모자라 고수가 불러주어 게임을 같이 하게 되면 정말 감사해하며 초대에 응한다. 고수들 입장에서는 자기 시간 내서 오는데 중하수와 게임을 하는 것이 즐겁지가 않은 것이다. 게임에 이겨도 별 성취감이 없고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고수들 가운데서도 초보나 중하수들에게 친절한 분들이 꽤 있다. 다른 많은 고수들이 자기들끼리만 게임을 하며 중하수들과 상대해주지 않을 때 이 분들은 기꺼이 볼도 받아주고 난타를 치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 따뜻한 조언도 해주는 것이다. 테니스나 탁구 혹은 배드민턴 같은 구기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수 입장에서 이런 분들은 정말 고마운 존재다.
반면에 고수는 고수인데 어찌나 고수 티를 내는지 어찌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지 아니꼬움을 자아내는 사람도 있다. 비슷한 실력의 상대가 있으면 절대 하수들과 몸을 섞지 않으시는 이 분들은 사람이 모잘라거나 하수들이 삼고초려하면 겨우 게임에 응한다. 그것도 말없이 본인의 실력을 보여주면 경외로울 텐데 게임하면서 수시로 이런 건 이렇게 치면 안된다, 왜 그 볼을 건드리냐, 더블폴트는 정말 곤란하다, 연습 더 많이 해야겠다 등등 하수들의 기를 죽이는 코멘트가 끊이질 않는 경우도 있다.
테니스 경기를 하면서도 사람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테니스에는 기본적인 테니스 에티켓 혹은 매너라는 불문율이 있는데 같은 규칙이더라도 그것을 행동에 옮길 때는 사람마다 차이가 제법 많이 난다. 가장 흔한 예는 코트에 떨어진 공을 주워서 서브를 하는 사람에게 건네주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코트 반대편 상대팀에서 공을 이쪽으로 건네줄 때는 중간에 네트가 있기 때문에 라켓으로 공을 살짝 쳐서 네트를 넘겨 보내면 된다.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잘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복식에서 자기 팀 서브권자에게 공을 건네줄 때는 정말 확연한 차이가 나곤 한다. 이 경우에도 역시 공을 받는 사람이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라켓으로 살짝 공을 쳐서 보내주는 것이 예의이다. 매너가 없는 경우라는 건, 공을 너무 세게 쳐 보내거나 엉뚱한 곳으로 쳐 보내거나 혹은 자기보다 (서브권자로부터) 더 멀리 있는 사람이 공을 서브권자에게 보내주기 전에 먼저 급하게 공을 보내는 경우 등이다. 이럴 때 볼썽사나운 경우는 볼을 적당한 힘으로 쳐서 받기 편하게 주는 게 아니라, 볼을 굴려서 보내는 경우나 볼을 주워주지 않고 서브권자 스스로 볼을 줍도록 만드는 것이다. 볼을 굴려 보내면 받는 사람은 허리를 숙여서 받아야 한다. 더 힘들다. 가까이 있는 볼을 그냥 놔두고 자리를 이동하는 사람은 정말 얌체처럼 보인다.
정말 잘 몰라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성품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게임 중 발생하는 귀찮은 공줍기나 같은 팀 선수의 실수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과 게임을 하면 지더라도 기분이 좋은데, 어떤 사람과 게임을 하면 이겨도 기분이 찝찝하거나 화가 날 때가 있다.
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나는 과연 좋은 파트너였는지 괜찮은 동호회 멤버로 기억되고 있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나 역시 지난 7년 간 많은 분들께 말로 상처를 주고 행동으로 기분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오늘 밤에도 게임이 있다. 건강을 생각하고 스트레스 풀려고 온 사람들이다. 나로 인해 그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 스트레스와 언짢음으로 얼룩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운동해야겠다.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