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이름을 몰라 내비에 '범전동'을 찍고 찾아갔다. 이십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그곳 주위를 차로 몇 바퀴나 돌았다. 예전의 정문이나 후문 자리 어딘가에 주차를 하고 싶었는데 그곳 풍경이 많이 달라져 헤맨 거였다.
벽돌 울타리로 사방이 막혀 있던 그곳은 이제 360도로 뚫려 있었다. 바깥세상과 너무도 대조적이었던 미군 군부대 시설과 미국식 주택과 도로는 사라졌다. 부산 서면 바로 옆에 자리하던 이상한 퍼즐 한 조각이 원래의 주인인 부산 시민들에게 돌아가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옷을 입은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할 운명이었던 자리이지만 나의 치열했던 젊은 날 한때의 풍경이 사라졌음을 확인하는 마음은 조금 서운하고 아쉬웠다.
미세먼지도 없던 그 파아란 날 제법 따가운 햇볕을 쬐며 공원 안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 사라졌구나 하는 아쉬움을 느끼던 순간에 낯익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원통 막사들이 아직 그 자리에 열을 지어 남아있었던 것이다. 매월 지급받았던 이발 쿠폰으로 머리를 깎던 이발소도 그 반원통 막사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걸 떠 올린다.그 막사들은 뽀로로 도서관 혹은 편의점 등으로 둔갑해 있었다.
패트롤카를 타고 순찰을 돌던 길가에 늘어서 있던 미군부대 안의 단독주택들도 일부 보존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아파트에서만 주로 살았던 나는 미군 가족들이 살던 1층짜리 주택과 정원이 꽤 부러웠다. 세월이 흘러 다시 확인하는 그 집들은 그렇게 크고 멋들어진 곳은 아니었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시절의 흑백사진과도 같은 풍경과 겹치어 반갑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한 묘한 감정을 갖게 했다. 아직 집 어딘가에 있을 앨범 속에는 같은 공간의 이십여 년 전 풍경이 나와 그 시절 동료 군인들을 담고 있는데... 더할 나위 없이 화창한 봄날에 찾은 이곳은 참으로 다른 공간이 되어버려, 켜켜이 쌓이고 쌓인 시간의 마법을 실감케 했다.
순하디 순했던 내 룸메이트 네이쓴 일병, 콧수염의 진짜 사나이 스미스 병장, 성격이 아쌀했던 왓킨슨 중사... 아직 눈에 선하다. 카투사 동료들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연락이 많이 닿는데 미군 동료들은 온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이따금 사진처럼 떠 오르며 기억할 뿐이다. 다들 어디에서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까.
건강한 몸으로 다시 추억의 장소를 찾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비록 그때의 감성을 온전히 맛볼 변하지 않는 풍경은 아니었지만, 남은 흔적만으로도소중한 상념에 젖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