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Jul 02. 2019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다시 일본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게 될 거라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적어도 일본을 떠난 후 이렇게 빨리 그것도 일본과 관련된 비즈니스로 독립하게 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큐슈를 떠난 후 1년 반 만에 스크랩(고철) 트레이딩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어떻게든 일본의 거래처와 일어로 의사소통하며 일은 하고 있지만, 스스로 실력이 부족함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일어 의사소통능력을 좀 더 키우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학원을 다닐까 개인 교습을 받아 볼까 이런저런 생각은 많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가운데 심리적으로 위안이 되도록 일본 영화를 좀 더 자주 보게 됐다. 일본 영화는 자막을 보며 배우들의 대사를 들으면 꽤나 공부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를 감상하는 거니까 일단 재미가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일어 공부에 도움이 되니 얼마나 심적으로 위안이 되는가.  


 최근에 연달아 본 일본 영화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이렇게 세 편이다. 개봉 영화관에서 본 작품은 한 편도 없고 모두 혼자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온라인상으로 유료 다운로드해서 감상했다. 감독의 이름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는데 웬걸, 이 세 영화 모두 같은 감독이 만든 작품들이 아닌가.


 세 편 모두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 흡입력이 있었고, 정서적으로 고요함 가운데 내면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냥 혼자서 편안히 영화의 화면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짠해지고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에 젖게 된다. 건조해진 나의 정서는 촉촉해지고 무언가 이 세상의 따스한 구석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니, 나라는 인간을 조금은 더 인간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느낌이랄까.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는 딸이 넷이나 나온다. 딸이라는 존재는 언젠가부터 내게 일반명사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단지 내가 딸을 둔 아빠이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영화나 소설 속의 딸, 일상에서 만나는 세상의 많은 딸들, 딸이지만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삶의 어떤 시점을 지나면서 크게 변했다.


 네 명의 딸들은 아빠가 같으나 엄마는 달랐다. 이미 성인이 된 첫째, 둘째 그리고 셋째 딸은 엄마와 떨어져 셋이서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의 언니는 존재를 몰랐던 막내 여동생과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다.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내던 아빠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면서 말이다. 물론, 서열상 이제 넷째가 되는 막내딸 스즈 역시, 피붙이 언니들을, 그것도 세 명이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 막 저세상으로 가신 아빠라는 끈을 통해서.


 글쎄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한 일일까? 아빠가 자신들을 떠나 어딘가에서 만난, 엄마 이외의 여자에게서 난 여자 아이를 여동생으로 인정하고, 한술 더 떠서 자기들 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다니! 게다가 그 어린 여자 아이 역시 생전 처음 보는, 엄마가 다른 언니들을 따라나서기로 결심하다니!


 영화를 잘 보면, 그 네 명의 자매들이 처음 만나면서 빚어지는 장면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노라면 그게 가능한 일일 수 있겠다는 공감이 깊게 스며든다. 아빠만 같고 엄마는 다른 자매들이 어떻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같은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자, 영화 내용은 구체적으로 별로 밝힌 게 없다. 그냥 묻지 마시고 한 번 감상해 보시라!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