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살아간다

by 안드레아

척추가 똑바로 펴진 느낌은 근사하다. 침대가 문제였던 것 같다. 라텍스 타입의 간이 매트리스를 쓰는 요즘에는 척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이 없어 만족스럽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운도 없고 의욕도 별로 느껴지지 않다가 점심을 친구와 만나 먹는데 몇 입 먹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고이는 기분. 그렇게 간단히 좋아질 것을 오전 내내 '나이가 든 탓일까, 요새 나 왜 이러지?' 하며 의기소침해 있는 경우가 많다.


커피를 오후 세 시 이후에 마시면 밤잠을 설치기 쉽다. 그러나 오전에 적시에 한 잔 마시게 되면 얼마나 한나절이 개운한지 모른다. 매일 마시면 효과가 줄어들 것 같아 이틀에 한 번 꼴로 마시려는 내 시도가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커피를 매일 마시지 않는 건, 아끼는 옷을 자주 꺼내 입지 않는 기분과 비슷하다.


오랜만에 대만으로 출장을 왔다. 일본에 살 때 처음 와 보고 거의 오 년 정도 지났을 것이다. 그때는 일본 회사의 직원이었고 지금은 독립해서 일하고 있다. 더구나 그 사이 나는 2년의 공백을 두고 전혀 다른 교육 비즈니스 분야에 있다가 다시 철강 비철 원자재 트레이딩 업계로 돌아왔다.


오 년 전 대만에서 만났던 대만인 파트너 케빈은 여전했다. 다시 이 철스크랩 비즈니스로 만나게 될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인생은 참 묘하다. 사람의 인연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일로 맺은 이 대만 친구와는 이렇게 끊어졌다 어느 사이 다시 이어진 것이다. 변함없이 성실하고 겸손하며 능력 있는 이 파트너와의 재회가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을 들게 한다.



시간이 어찌 될지 몰라 미처 연락하지 못했던 전 종합상사의 선배와도 연락이 닿아 육 년 만에 만나 타이베이 중심지 101 빌딩 앞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내가 중국으로 첫 주재원 발령을 받고 나갔을 때였다. 중국어도 잘 못하던 시절 그는 나보다 사 년 앞서 광저우 지사에 나와 일하고 있었다. 늘 자상하게 신출내기 후배를 대해 주었다. 밥도 무진장 얻어먹었고, 당시 교민 사회의 인맥도 많이 소개해 주어 낯선 곳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11년 묵은 예전의 이야기들이 타이베이 한 사천요리 식당의 테이블 위를 수놓았다. 둘 다 광저우가 첫 해외 부임지였기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희망과 산뜻한 에너지가 가득했던 그 시절을 함께 추억했다.


그 역시 인자하고 따뜻한 눈빛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자신이 많이 나이 들었다고 끌탕을 했지만 내 보기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누군들 세월을 마냥 비껴갈 수 있겠는가. 그 마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배려하는 측은지심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는 늙지 않았다. 여전히 맑은 기운이 살아있는 젊은이와 같은 거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게 입에 밴다. 오늘도 선배와 그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좋아하는 운동을 심하게 하고 나면 어김없이 그 여파가 며칠을 간다며 우리는 서로에게 맞장구를 쳤다. 후훗. 나이는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안다. 그도 알고 나도 알고 살다 보면 다 느끼게 된다.


먼 미래를, 아니 가까운 미래라도 예측하고 준비하며 사는 게 쉽지 않다. 맨날 그렇게 계획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건 힘이 든다. 적당히 생각하고 지금 좀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이 순간의 사소한 행복을 좀 더 느끼며 살아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아까운 이 순간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