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사람도 - 어쩌면 밝아 보였던 사람도 - 삶의 어떤 지점에서 추욱 처질 때가 생긴다.
그건 어쩔 수가 없다.
마치 우리가 없는 돈 쪼개어 산 주식이 마냥 오르기만 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그렇다고 무슨 큰일이 있거나, 꼭 엄청나게 생활이 힘들어서 때문만도 아니다.
추욱 처지고 왠지 기운이 나지 않고 사는 게 재미없게 느껴질 때가 오고야 만다.
원인은 틀림없이 있다. 아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지만 뭔가가 나를 짓누르고 있다. 나의 에너지가 바깥으로 뻗어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스트레스는 안에서 고이고 배수구는 머리카락과 각종 오물이 뭉쳐 막혀 있다.
그토록 좋아하는 테니스를 쳐도 시큰둥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도 일지 않는다. 돈이 아까워 대충 한 끼를 때우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생각해서 두 끼 값에 해당하는 걸 먹어도 본다. 해가 나는 날 우중충한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탈출도 해 본다. 이건 꽤 효과가 있다. 숨을 좀 쉴 수 있는 것 같아서이다.
나의 삶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없어질 때가 온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서 당장 효과가 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당장 해결하기 어렵고 문제도 꼬일 대로 꼬여 있어 생각만 하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들이 살다 보면 꼭 튀어나온다. 예기치 않은 시점에 방비가 안 되어 있는 때를 골라서 말이다.
천주교 신자이지만 이미 어린 시절이나 청년기의 뜨거움은 요즘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가까스로 미사를 챙기고, 출근하는 시간에 기도를 좀 하려고 노력하는 정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생기는 맑은 시간과 자기 전에 확보되는 알짜배기 시간은 기도나 성서 읽기에 쓰이지 않는다. 가끔 생기는 맑은 아침 시간에는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밤에 생기는 고요한 시간에는 노래 영상을 감상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또 글을 쓰거나 하게 된다. 물론 저녁에 생기는 가장 많은 시간은 몇 시간이고 테니스에 쏟아붓는다.
그런데 삶이 힘겨워지고 그 답답하고 처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오자 그제야 조금 변화가 생긴다. 기도를 좀 더 절실하게 하고 자기 전에 성서를 읽으려고 한다는 거다. 신께 매우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행동이다. 삶에서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어떤 자원도 이 진 빠지고 소화불량처럼 답답한 마음을 잘 달래 줄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댈 곳이 없을 때가 온다. 그때를 피하거나 그때가 오더라도 아주 가끔 아주 짧게 오도록 한다면 좋겠으나,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 그때와 만나 있다. 그때를 빨리 보내려고 안간힘을 써 보기도 하지만, 욕심을 내면 낼수록 마음은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든다. 제트 기류를 만난 비행기 안에서 속이 뒤집어지고 어지러울 때 그 상황을 당장 해결하려고 애쓰면 공포를 느끼게 될지 모른다. 시선을 멀리 두고 마치 출렁거리는 보트에 탄 거라 상상하며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기댈 곳 없는 보잘것없는 인간인 나는 조금 더 소중한 시간대에 기도를 하고, 성서를 읽는다. 그렇게 그때를 또 감사히 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