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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과 사업가 (1)

키타큐슈 이야기 제 10화 - 상해 출장길에서 -

by 안드레아

상해 출장길에 반가운 두 사람을 만났다. 한 분은 대우인터 본사에 근무할 때 모시던 상사이자 중국 지사 주재원 전임자였던 K부장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같은 팀에서 일했던 친구 H사장이다.


H사장은 올해 초 장자강 상해 출장을 왔을 때도 만났지만 K부장님은 그때 일이 있으셔서 얼굴을 뵙지 못했었다. 이번에 만나서 K부장님과 마지막으로 언제 만났는지 따져보니 내가 중국에서 일할 때 만나고 못 봤으니 거진 5년이 흐른 셈이다.


K부장님은 내가 아는 대우맨들 가운데서도 가장 머리가 뛰어나고 일을 잘 하는 상사맨이다. 그가 대리 과장 시절, 그가 이끄는 우리 금속1팀(Billet: 철근 빔 등을 생산할 때 쓰이는 철강 반제품, 봉형강 등을 트레이딩 했었음)은 전사 40여 개 팀에서 언제나 수위를 다투는 실적을 거두곤 했다. 러시아 중국 동남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트레이딩 직원 7~8명 정도가 일하는 우리 팀은 연간 빌렛 160만 톤을 삼국간 트레이딩 하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실제 팀장과 본부장님이 위에 계셨지만 당시 K 대리 혹은 K과장은 지금 생각하면 그 젊은 나이에도 수백만 불짜리 계약을 매달 여러 차례 진두지휘하며 후배 상사맨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지장의 역할을 십분 잘 수행했다.


지금도 상해 지역 법인에서 주재원으로 중국 Biz의 중심에서 일하고 있는 그이지만 당시로부터 10여 년 이 지난 지금 그를 바라보는 나는 무언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후배인 나와 H사장은 K부장님에 앞서 회사를 떠난 입장이었다. H사장은 중국 상해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고 돌아올 즈음 독립하여 개인 무역회사를 차렸고 나는 H사장보다 조금 앞서 일본 회사로 이직한 것이다.


K부장님께 혹시 독립하실 생각은 안 해보셨냐고 여쭤 봤다. 엷은 미소를 띠며 그가 말하는 것은 자기라고 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알다시피 자기는 이미 회사의 후배들이 이사로 진급하는 걸 경험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했다. 본사에서 또 법인에 나와서 일을 하며 한 번 두 번 업무상 사고로 인해 징계를 먹고 중국 Biz도 이전과 달리 침체되는 바람에 개인 평가가 그리 좋게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국내 최고 명문대를 졸업한 그가, 대우인터 역사상 가장 빛나는 팀의 실질적 리더 역할을 했던 그가 지금은 변화된 현실 앞에서 약간은 어깨가 처진 듯 또는 초연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안타까웠다. 13년 간 대기업에 다니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한국의 대기업에서 개개인은 자신의 능력과 성실성만으로 평가될 수 없었다. 몇 년 마다 자리가 바뀌는 대기업의 트레이딩 담당자들의 특성상 그 자리에 있을 때 경기가 좋거나 맡은 일의 운대가 좋거나 하면 평가가 좋겠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열심히 뛰어도 경기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조직 안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느끼는 바는 인사 평가가 얼마나 조직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었다. 정량평가(수치로 드러나는 실적에 의한 평가)는 각 단위의 저마다 다른 환경과 업무상 특성을 정확히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성평가(수치 이외의 정상을 참작하는 평가)로 보완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열정이 있고 능력이 뛰어나며 회사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재가 중간에 낙오하는 경우가 생긴다. 반대로 언제 어디서나 안테나만 쭈욱 빼고 정치 외교술에만 능한 사람이 승진을 거듭하며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경우도 많다.


지금 나도 또다른 조직 안에 있지만 거대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는 그곳을 떠나 자그마한 조직으로 게다가 전혀 다른 문화의 일본 회사로 옮기자 십수년간 몸담았던 전 회사에서 느끼지 못했던 차이를 여실히 느끼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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