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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Sep 05. 2019

노가리 가시는 목에 박히고

 63년, 73년, 83년생 세 사람이 모였다


 어떻게 하다 보니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끊어지지 않고 꾸준히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셋 다 중국 광저우에서 함께 성당을 다니고 성가대 활동을 같이 하던 사이다. 세대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소박하고 평범했다. 춘천에서 기차로 올 막내를 배려해 장소는 용산이 되었다. 원래 전이 나오는 집으로 가려했으나 지하철역에서 나오자 비가 쏟아졌고 우리는 가까운 치킨집으로 행선지를 변경했다.  


 83년생은 멜버른에서 늦깎이 학생으로 정골의학(osteopathy)을 공부를 하고 있었다. 미혼인 녀석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중국 영사관에서 일하던 녀석은 어느 날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유럽 어느 나라에 가서 물리치료 과정을 이수하더니 아예 대학엘 다시 들어가 전공으로 공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거의 일반 의학 수준에 준하는 방대한 양의 과정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학부만 보통 5~6년 과정이라고 들었다. 호주와 영국의 학교를 꼼꼼히 비교하던 그는 호주 멜버른에 있던 학교를 선택하고 3학기 과정을 마친 상태였다. 그랬던 녀석이 호주를 떠나 다시 영국으로 가서 공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63년생 형님은, 나이가 제법 찬 83년생 동생이 결혼도 안 하고 늦은 나이에 타지에서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의학 공부를 하는 것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팔삼 막내가 다시 호주 학교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건너가겠다고 하니 마냥 맞장구를 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공부가 끝나면 마흔이 넘어간다며 눈을 찡그렸다.


 헌데 팔삼 이 녀석 영국에 가기 전에 몇 개월 한국에 있는 틈을 타 또 새로운 걸 배우고 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자격증을 따려한다고 했다. 안 그래도 녀석의 프사가 많이 달라졌다 했는데 배운 걸 그대로 자기 얼굴에 써먹고 있었던 게다. 화장품을 오랜 세월 비즈니스로 다루었던 육삼 형님은 팔삼의 화장 스타일이 지금 한국의 트렌드인 한 듯 안 한듯한 화장법과 다르다며 놀렸다.


육삼은 소주, 칠삼은 콜라, 팔삼은 맥주


 테이블 위로 잔들이 날아다니며 서로의 몸뚱아리를 부딪혔는데 모양도 내용물도 제각각이었다. 육삼은 소주잔, 칠삼은 콜라가 담긴 컵, 팔삼은 오백짜리 맥주잔이었다. 옆자리의 누가 우리를 훔쳐보았다면 ' 저기 왜 저래? 완전 제 맘대로 술판이네! ' 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첫 안주로는 뼈를 발라 매운 소스로 간한 브라질산 치킨이었다. 처음 먹어 본 요리였는데, 뼈를 다 제거한 이 신기한 메뉴는 치킨이라기보다는 빨간 소스의 수육처럼 보였다. 부드럽고 매콤하니 맛있어서 자꾸만 손이 갔다. 술 못하는 칠삼이 안주빨을 세우자 뼈 발린 브라질 치킨은 금세 사라졌다. 다음 안주로 노가리가 채택되었다. 육삼은 종업원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다.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마요네즈와 간장 소스를 곁들여 달라는 거였다. 중년의 여성 종업원이 육삼 형님의 주문을 듣더니 뭘 좀 아시는 분이라며 흔쾌히 오더를 받아 주었다.


 노가리는 완전히 마른 녀석이 아니라 씹기에 딱 적당한 수분을 조금 머금고 있었다. 육삼의 특별 소스를 찍어 먹으니 간이 기막히게 잘 맞았다. 소주잔과 맥주잔 그리고 콜라컵이 제법 속도를 유지한 채 한 잔, 두 잔 비워지고 있었다.


 자리가 파할 즈음 칠삼은 목에 노가리 가시가 박혔다는 걸 알았다. 큰 물고기의 가시처럼 아프게 박힌 건 아니지만 노가리의 가늘고 작은 가시는 틀림없이 목구멍 왼편 어딘가에 박혀 있었고 아무리 물을 마시고, 야채와 무를 대충 씹고 삼켜도 요지부동이었다.


 가시가 목구멍에 박힌 건 참 오래간만이다. 하필 다음날 해외 출장이 잡혀 있는데 문제가 커지는 게 아닐까 살짝 불안해졌다. 야채를 대충 씹고 삼켜 보았다. 치킨과 함께 나오는 네모난 무도 한두 번 씹은 뒤 덩어리째 삼켰다. 가시에 닿는 느낌이 전해졌고 찌릿하고 아팠지만 가시는 그 자리에 남았다. 육삼이, 이럴 땐 밥알을 씹지 말고 삼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당장 밥은 없었다. 칠삼은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이비인후과에 가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막내가 춘천으로 돌아가는 열차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아쉬운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섰다.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용산의 밤거리로 나섰다. 우산이 두 개였기 때문에 덩치 큰 육삼이 하나를 쓰고, 칠삼과 팔삼은 작은 우산을 나누어 썼다. 소주가 기분 좋게 혈관에 녹아든 육삼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다소 혀 짧은 소리로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육삼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기, 오늘 거기 나가서 절대 말 많이 하면 안 돼요!"


육삼은 아내가 했던 이 말을 두 사람에게 세 번인가 들려주며 쉴 틈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천루 사이로 빗줄기가 쏟아지고, 언젠가 또 떠올리며 추억할 십 년씩 차이나는 세 사람만의 밤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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