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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Sep 19. 2019

옛날 집 근처를 지날 때

 나에게 이제 옛날 동네라 말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한 동네에 20년, 30년 아니, 거의 평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제법 많은 동네를 거쳤다. 최근 십 년 동안에는 나라도 중국, 일본, 홍콩 다시 우리나라로 바꾸어 가며 살던 동네들이 과거의 공간으로 남겨졌다.


 운전을 하다가 예전 살던 곳을 우연히 지나칠 때도 있고, 출장이나 여행을 가서 내 과거의 흔적을 더듬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든 홀로 그 공간을 지나치거나 다시 찾을 때엔 가슴이 뭉클하거나 저미거나 아련해지곤 한다. 그러한 감상을 피할 길이 없다.



 그곳은 나의 일부였다. 매우 친숙하다. 늘 지나치던 도로이며 건물이고, 무심히 때로는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던 나무이며 꽃이고, 사진을 찍던 들이며 저수지, 강물이며 하늘이었다.


 물건 하나하나를 다시 볼 때, 그 시절 그 순간을 함께 하던 사람과의 기억이 기필코 떠 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함께가 아닌 혼자 그 공간에 있음을 절실히 인식하면서 말이다. 때때로 얼마나 그 시절이 그리운지 얼마나 붙잡아 그러쥐고 싶은 심정이 되는지 모른다.


 어느 휴일 해질 무렵 동네 근처 대학교 교정의 텅 빈 주차장을 공을 따라 쉴 새 없이 뛰어다니던 어린 딸의 움직임. 저녁 찬거리를 사러 카트를 끌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우리들의 발걸음. 퇴근길 운전대를 잡고 신호 대기 중에 바라보던, 길게 누운 태양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던 건물들. 떨어지는 해를 잡기 위해 서쪽 해변으로 차를 숨 가쁘게 달리던 내 출퇴근 자동차. 이른 아침 출근 전에 들러 그 잠깐의 시간 모닝커피와 책을 즐기던 목재 인테리어의 카페 아침 풍경.


 그곳에 더 이상 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먹하고 조금은 슬픈 감정마저 들게 한다. 다시는 그때 그 모습으로 그곳에 살 수 없음을 알기에 떠 오르는 잔상들은 박제와 다름없다.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할까. 좋아하는 것들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 준다면 좋으련만. 시간은 그 어떤 예외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변하고 조금씩 혹은 갑자기 사라지는 건 냉혹한 시간이 주는 선물이다. 이게 삶이다.


 너무 슬퍼하거나 감상에 깊이 빠져들지는 말자. 잠시 이 순간을 즐기고, 시간을 지켜 풀장 밖으로 나가기로 하자. 샤워를 하고 맑은 정신으로 삶과 마주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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