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남향에 대한 집착
생각해보면, 그런 관점은 소설가라는 직업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말일지도 모른다. 타고날 때부터의 재능이 풍부한 소설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혹은 무엇을 해도) 자유자재로 소설을 쓸 수 있다. 샘물이 퐁퐁 솟아나듯이 문장이 자연스레 솟아올라 작품이 완성된다. 노력할 필요 같은 건 없다. 그런 사람이 더러는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러한 타입은 아니다.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주위를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에게 샘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괭이를 손에 쥐고 부지런히 암반을 깨고 구멍을 깊이 뚫지 않으면 창작의 수원水原에 도달할 수 없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몸을 혹사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작품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일일이 새롭게 깊은 구멍을 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활을 오랜 세월에 걸쳐 해가는 동안, 새로운 수맥을 찾아내고 단단한 암반에 구멍을 뚫어 나가는 일을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효율성 있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의 수원이 메말라간다고 느껴지면 과감히 바로 다음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자연의 수원에만 의지하고 있던 사람은 갑자기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어도 그리 쉽게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