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까지는 아니더라도 빌린 돈을 막지 못해 심각한 낭패를 겪을 순간을 가까스로 지났다. 인생에서 이런 경험을 제대로 맞닥뜨린 적이 별로 없었기에 일상의 삶이 매우 피폐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오늘 아침 책 두 권을 들고 집 근처의 카페로 왔다. 어슬렁 거닐다 한쪽 면 유리문을 전면 개방해 놓은 가게가 보여 처음 들렀다. 바닐라라테 한 잔을 주문하고 읽던 책에서 책갈피를 빼어 마지막으로 읽었던 페이지를 펼쳤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가운데 하루키 작가가 지바 현에서 열린 마라톤 풀코스에서 근육 경련으로 중간에 달리지 못하고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실패의 뼈저린 경험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이재효 갤러리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글도 게을러졌다. 뼈아픈 경험을 하며 지나고 있는데 그걸 글로 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키의 글을 읽으며 무언가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브런치를 켰다.
연휴의 중간 즈음 이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커피 한 잔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음에 진심으로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지만, 일상을 견디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충전한 기분이 들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주변의 지인들 중에 나 이상으로 경제적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기에 그 막막함과 울분, 좌절과 상실감을 일부나마 이해하거나 느낄 수 있어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더구나 이렇게 코너에 몰려 하루하루가 숨이 막히고 도무지 살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안타깝고 대체 답은 어디쯤 언제쯤 보일까 하는 답답한 심정이 된다.
이재효 갤러리에서
많은 걸 한꺼번에 생각하기가 버겁다. 이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아직 풀기도 전에 제풀에 지치는 것 같아서이다. 그저 급한 걸 먼저 한두 가지라도 해결하는 게 좋다. 문제가 쌓여가는 걸 보는 일은 참으로 괴롭고, 내 마음은 갉아먹힌다. 야금야금.
좋은 기운을 조금 축적했으니, 앞으로 나아가자. 좋은 기운을 내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그것을 계속 불려 나갈 것이다. 남에게 잘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 자신에게 더 잘하는 셈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저, 어둠과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가능하면 밝음과 빛 안으로 속히 돌아오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면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