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났다. 머리가 찌끈거린다. 눈을 떠보니 하얀 바탕에 노란 꽃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벽지가 보였다. 방에는 켄타로 혼자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채였다. 몸을 좀 움직이고 싶었으나 불행히 왼쪽 팔과 목에 깁스가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조금만 근육에 힘을 주어도 온몸에 통렬한 아픔이 느껴져 더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시체처럼 똑바로 누운 자세로 천장의 노란 꽃들이나 쳐다보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어찌 된 걸까. 그래. 내가 그 자식을 따돌리려고 삼거리에서 속도를 늦추지 못한 채 급히 우회전을 하면서 이 사달이 났구나. 가만있자. 오늘 며칠인 거야? 내 소지품은 어디 있는 거야?'
켄타로는 정신이 좀 들자 사고가 났던 당시 전후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정말 어처구니없이 이런 봉변을 당했다 생각했는데 결국 자초한 일이었다는 결론이 슬쩍 머리 한 구석을 스쳐 지나갔다.
문이 열렸다. 간호사 하나가 들어왔다. 간호사가 그의 이름을 불렀고 그는 대답했다. 깁스 때문에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켄타로를 위해 그 여자 간호사는 그의 얼굴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며 대화를 시도했다.
"켄타로상,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토요일 아침에 앰뷸런스로 실려오신 후 곧바로 외과수술에 들어가셨어요. 전신 마취를 했다곤 하지만 일요일 내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셨어요."
얼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하는 간호사의 오른쪽 귀 위쪽에서 머리카락 몇 올이 흘러내려와 켄타로의 얼굴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하얀 간호사복을 입고 연두색 카디건을 걸쳐 입은 간호사의 얼굴이 언뜻 보기에 아름다웠다. 그래서 켄타로의 눈길이 그녀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계속 무어라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하게 놔두었다. 그의 눈길은, 잠시 전 흘러내려 그의 얼굴을 간지럽혔던 그녀의 머리카락 아랫부분을 타고 올라가 사과 같은 얼굴을 줌-인했으며, 그다음엔 그녀의 물고기 모양 양쪽 눈과 짙고 긴 속눈썹, 아담한 코와 연분홍빛 건강한 입술로 차례로 꼼꼼히 이동하며 스캔해 나갔다.
몸이 이 지경이 되었지만 매력적인 이성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의 관심은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뚱이에서 청순하고 해맑은 백의의 간호사에게로 급히 순간이동해 버리는 것이었다.
; 이름은 마코 레나, 나이는 스물일곱 살, 산업의대 외과병동 간호사
마코는 키타큐슈 토박이다. 어쩐지 그녀의 하얗고 하얀 얼굴은 어둡다. 피부색이 그렇게 하얀데 얼굴에 그늘이 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상이 비현실적이다. 말수가 적다. 출근해서 그녀는 동료들과 꼭 필요한 일에만 대응하고 먼저 누군가에게 일 외적으로 말을 거는 법이 없다. 일은 제법 야무지게 잘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말수가 적은 마코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는 대상은 자기가 맡은 환자들이다. 이는 일종의 사명감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간호사로서 환자들을 좀 더 편안하고 안정된 기분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평소 가족들이나 동료들에게 하는 것보다 눈에 띄게 많은 대화를 시도한다. 본인에게는 노력이다.
지난 토요일 교통사고로 온몸이 망가진 한 30대 남자가 입원했다. 마코는 수술 후에도 깨어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진 그 남자를 정성껏 돌봤다. 미드 쉬프트(야간근무조)인 그녀는 보통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 밤과 일요일 밤 내내 이 남자 환자를 지키며 빨리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3인 병실에 홀로 누워 있는 이 남자. 불 꺼진 병실 안으로 비쳐 드는 밝은 달빛. 그의 날렵한 콧매는 한쪽으로 깊고 진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두세 시간마다 한번씩 들러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가기를 반복하면서 문을 닫고 나오기 전에 다시 한 번 그의 얼굴 옆모습을 쳐다보곤 했다. 상대는 마코를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틀의 시간 동안 마코는 이 남자를 간호하면서 친밀한 감정까지 생기는 야릇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 그런 감정이 스며드는 걸 느끼며 마코는 놀랐다. 말 한마디 섞지 않고도 이런 느낌이 들 수 있는 것일까. 저 남자가 비교적 준수한 외모를 가진 탓일까. 지금까지 생활 속에서 이케멘(미남)을 많이 만났지만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뭐랄까. 간호를 하는 이는 마코 레나 쪽이었지만, 오히려 잠든 이 남자가 그녀를 위로해 주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을 뿐인데 그 짧은 시간 안에 인정하기 애매한 감정이 고여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