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죄를 읽는 남자 4편

의미를 더하는 존재

by 안드레아

켄타로가 입원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몸은 조금씩이나마 회복되어갔다. 아직 팔 깁스는 풀지 못했지만 목은 부상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여 아침에 깁스를 풀게 되었다. 육체적으로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입원하여 지낸 하루하루는 몸이 느낀 고통을 상쇄시키는 무언가를 안겨 주었다.


켄타로: “ 마코 씨, 저 퇴원하면 우리 같이 영화 보러 갈까요? ”

마코 레나가 켄타로 목 부위의 깁스를 완전히 걷어 냈을 때 그가 말했다.


마코는 미소 지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였다.

마코: “ 그럴까요? 근데 저 쉬는 날이 왔다갔다 해요. 켄타로 씨 일정에 맞추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켄타로: “ 괜찮습니다. 제가 마코 씨 쉬는 날로 맞추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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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번거로움을 중화시키는 존재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이 지배하도록 하는 존재


그랬다. 그의 육체적 고통과 입원 상태의 번거로움을 중화시키는 존재. 아니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이 지배하도록 하는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둘은 일주일 동안 함께 하면서 마치 소개팅을 한 후 서로 마음에 들어 사귀게 된 남녀와 같은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이미 서로의 신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처지를 기본적으로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오빠가 하나 있지만 결혼해서 근처 도시에 나가 살고 있었다. 출가한 오빠와는 왕래가 거의 없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조금은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그녀는 아주 이따금 생각했다.


마코는 검소한 여자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자기 용돈을 벌었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젊은 여자들이 제법 그러하듯 소위 ‘지르기’를 하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가만히 생각에 잠겨서 어떻게 하면 싸고 좋은 걸 살지 나름의 방법을 고민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그녀의 쇼핑 색깔은 비슷했는데 마코의 쇼핑 스타일을 한 남자 동료 간호사가 표현한 적이 있었다.


햇살이 블라인드를 노랗게 물들이던 어느 화창한 점심시간이었다. 간호사 휴게실에 옹기종기 모인 일단의 간호사들은 벤또(도시락)를 까먹고 있었다. 그 가운데 매일 호토모토라는 브랜드의 벤또를 사 먹는 남자 간호사 하마타가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하마타: 저기 있잖아. 렌짱(마코 레나의 애칭) 말이야.

한 명의 남자 간호사 하마타를 마코를 포함한 네 명의 여자 간호사들이 쳐다보았다.


하마타: 렌짱 편의점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말이야.

마코 레나는 지금 하마타가 자기에 대해 무슨 말을 하려고 할지 몰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마타: 오니기리(삼각김밥) 두 개를 각기 한 손에 들고 있었어. 렌짱은 그 두 개의 오니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지. 하나는 불고기 맛이었고, 또 하나는 아마 평범한 야채 오니기리였던 것 같아.


마코는 하마타가 하는 얘기를 들으며 다른 간호사들의 반응을 살폈다. 하마타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그 두 개의 오니기리를 거의 5분은 쳐다보고 있더라는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한쪽 한쪽 오니기리를 응시하며 어떤 걸로 고를지 고민하더라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와르르 웃어버렸다. 평소 말수 적은 렌짱이 편의점 한쪽에 서서 삼각김밥 두 개를 놓고 장고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거였다. 그런데 하마타의 말이 그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병원 근처의 서로 다른 편의점 몇 군데서 똑같은 모습의 그녀를 여러 번 목격했다는 것이다.


마코는 겸연쩍게 같이 웃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웃음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얼굴은 웃고 있지만 자기가 마치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마타가 조금 야속했다.


이 남자 간호사가 평소 유머러스하고 짓궂은 데가 있었다. 그리고 마코가 생각하기에 이 남자는 유치했다. 누군가한테 들은 바로는 하마타가 마코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성으로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코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평소에도 관심은 별로 가지지 않았던 대상이지만 자기를 좋아한다면서 자기한테 하는 언행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면, 연두색 계열의 옷을 즐겨 입는 마코에게 풀 같다는 둥 색깔이 튄다는 둥 이상한 말을 해댔다. 렌즈 대신 안경을 쓰고 일할 때 근처를 지나며 “여자 기숙사 사감 선생인 줄 알았네.” 하며 툭 내뱉고 지나가기도 했다.


외모에 그다지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병원의 동료들은 대체로 마코 레나의 외모를 칭찬해 주는 편이었다. 그런 칭찬을 받으면 좀 어색하긴 하지만 감사하다고 꼭 표현을 했다.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마코 역시 여자였던 것이다.



<'> 차사고 8일 후, 산업의대병원 응급실


밤 11시를 막 지나고 있던 찰나 응급실 정문 앞에서 일대 소란이 일었다. 검은색 벤츠 두 대와 하얀색 토요타 프린스 한 대 그리고 블랙 밴 등 심상치 않은 무리들이 병원 응급실 앞 도로에 일렬 주차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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