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죄를 읽는 남자 5편

와타나베 씨

by 안드레아
" 의사 어디 있어! 빨리 불러와! 의사 빨리 불러와!!! "


응급실 앞에 일렬로 주차시킨 차들로부터 쏟아져 나온 무리들이 거칠게 문안으로 들어섰다. 무리 가운데 얼굴이며 가슴과 복부가 온통 붉은색으로 낭자해진 몇 사람이 보였다. 그야말로 피투성이였다. 응급실 당직 간호사들이 먼저 이동식 간이침대에 그 처참한 모습의 환자들을 눕혀 데리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응급실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피범벅이 된 환자들이 수술실로 들어간 후에도 부랑아들은 응급실을 떠나지 않고 자기들끼리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진을 치고 있었다. 그때 당직 수간호사 와타나베가 무리를 향해 다가갔다.


"저, 죄송하지만 이제 보호자 몇 분만 남고 다른 분들은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


무리들은 와타나베의 말에 눈을 부라리며 무슨 허튼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무리 중 키가 제일 작아 보이고 중간 보스처럼 보이는 사내가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 이년이 지금 미쳤나. 누구보고 돌아가라 말라 떠드는 거야? 어?"


와타나베가 동요하지 않고 응수했다.

" 여기는 당신들 같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에요. 보호자 대표만 남고 빨리 여길 떠나 주세요!"


옆에 있던 간호사 동료들은 이 장면에 너무 놀라 얼굴빛이 파래졌다. 와타나베가 야쿠자들한테 너무 강경한 태도로 나간 것이다. 평소에도 강직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 하는 그였지만 설마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태도로 일관하다니.


남자는 수간호사의 말에 더욱 격분하여 욕지거리를 쏟아냈고 당장이라도 폭력을 행사할 분위기였다. 와타나베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경한 눈빛으로 응수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급기야 한 마디 덧붙인다. 계속 여기서 응급실 업무를 방해하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이다.


중간 보스와 양아치 무리들은 씩씩대며 와타나베를 을러댔으나 그는 의외로 강했다. 잠시 후 무리들은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상의하더니 세 명만 남기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키 작은 중간 보스도 응급실을 떠나며 한 마디 외쳤다.


" 니 얼굴 내가 잘 기억하고 간다. 기다리고 있어. 겁대가리 없는 년! "



마코가 켄타로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방금 응급실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켄타로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켄타로는 놀란 눈으로 말도 안 된다며 어떻게 수간호사가 그렇게 할 수 있냐고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코 역시 자신도 너무 놀라 옆에서 동료 간호사들과 발만 동동 굴렀다고 했다.


켄타로: " 렌짱! 당신은 그런 상황에 닥쳤을 때 절대 와타나베 씨처럼 하면 안 돼요. 알았죠? 아무리 원칙이 중요하고 자기가 옳다고 해도 상대를 봐가며 해야지. 안 그래요? "


마코 레나: "네, 알았어요. 저는 그럴 용기도 없어요. 너무 무서워서 입도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켄타로: "근데 와타나베 씨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에요? 왜 그렇게 무모하죠? "


마코가 켄타로에게 와타나베와 의대 및 병원에 대해 이것저것 말해 주었다. 와타나베는 마코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마코보다 16살 위의 연상이고 벌써 이곳 산업의대에서만 20년 이상 재직한 베테랑 간호사였다. 산업의대는 원래 국립 대학교였는데 2년 전에 재정 문제 등으로 키타큐슈 시 소속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학교의 총장은 관계 출신 낙하산 인사로서 학교의 발전과 같은 고상한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학교가 키타큐슈 시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학교 재정을 위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중앙 정부로부터 받고 있었고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낙하산 총장은 그 허수아비로 세워졌을 뿐이다.


삼 년 전부터 정부 지원금이 줄기 시작하여 지금은 원래 받던 금액의 60%까지 줄기에 다다랐다. 그에 비해 어쩐 일인지 대학 등록금은 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새로운 주인이 된 키타큐슈 시는 재정에 관한 한 어떤 실질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따라서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용을 줄이는 방법뿐이었다. 실제로 교수들의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났고 신규 채용은 거의 없어졌다. 직원들의 해고는 쉽지 않기 때문에 역시 신입을 받지 않은 방식으로 학교는 비용을 줄여 나갔다.


이런 소용돌이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마코와 와타나베가 일하고 있는 의대병원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 자체적으로 돈을 벌고는 있었지만 산업의대라는 태생적 한계는 애초부터 지원금 없이 정상적인 운영이 쉽지 않은 구조였다. 때문에 조직의 안의 상하관계는 더 이상 합리적일 수 없었고 어떻게 하면 해고의 화살을 피해갈 것인가가 모두의 주된 화두로 변했다. 윗사람이 한 말은, 특히 인사권에 영향을 미칠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권위가 더해져 반대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다.


관리자급의 와타나베는 이 와중에 몇 안 되는 괜찮은 상사로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이 여자는 마치 군대 조직의 장교처럼 각이 떨어지는 말투와 행동을 지닌 사람이다. 처음 만나면 웃음기 없는 얼굴과 드라이한 말투 때문에 호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랫사람이나 윗사람 대하는 것이 똑같았다. 마코는 수년간 옆에서 그와 함께 일했고 늘 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잘 알았다.


와타나베는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타입이었지만 가끔 생각이 다를 경우에는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무엇이 옳은지 어떤 선택이 맞는지 바로 치고 들어갔다. 대개 윗사람들은 이러한 태도를 지닌 부하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부하의 의견이 옳고 그름을 떠나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과하지 않았다. 딱 필요한 만큼만 말했고 그가 말할 때는 합당하고 거부하기 힘든 이유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와타나베라는 여자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는 매력적인 데가 있었다. 아니, 상사든 부하든 오히려 그는 자기의 책임범위를 조금 넘어서라도 일이 돌아가게끔 일하는 방식을 취했다. 와타나베의 부하들은 물론 그를 존경했고, 상사들 역시 가끔은 열받는 느낌이 들지만 인정했다. 아니, 와타나베라는 부하를 좋아했다.


마코는 직장 생활을 하며 이런 상사와 함께 일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자신과 성격은 다르지만 와타나베가 가진 모습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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