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천칭
지난 사고의 후유증인지 퇴원하고 나서부터 두통에 시달린다. 켄타로는 지금까지 두통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이 뒷골부터 지끈거리는 귀찮은 통증 때문에 새삼 그간 얼마나 건강히 잘 지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아, 역시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닌 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느껴보고 십 수년간 잊고 지냈던 아픔이구나.’
마코 레나에게 문자를 보낸다.
'렌짱, 나 퇴원한 이후로 줄곧 머리가 아프네.
뒷골이 깨질 듯 아플 때가 많아.
지금은 아주 아프지는 않지만 꽤 지끈거려.’
마코는 여느 여성들처럼 문자를 그렇게 즐기지 않는 여자였다. 켄타로는 반대로 SNS를 활발히 사용하여 지인들과 소통하는 편이었다. 지금 보낸 문자에 대해서도 언제 답장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업무 시간 중에는 병원일이 바빠 문자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회신이 늦어도 이해하기로 했다.
하지만. 켄타로는 마코와 애인 사이로 발전하면서 문자나 전화의 빈도로 마음이 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서로 일하는 시간이 달라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문자나 전화로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특히 켄타로 쪽이 더 그런 마음일 것이다.
2주 전이었다. 평소 밤 근무를 하는 마코는 매주 화요일이 비번이었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가 되어야 퇴근을 하기 때문에 화요일 비번의 의미는 켄타로에게 있어, 퇴근 후 마코가 잠을 자고 화요일 저녁에 만나거나 수요일 밤 그녀가 출근하기 전까지 볼 수 있음을 의미했다. 켄타로는 당연히 화요일에 그녀를 만날 기대에 들떠 있었다. 3주 전에도 4주 전에도 화요일에 마코가 아침 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몇 시간 수면을 취한 뒤에 데이트를 했었다.
켄타로는 2주 전 화요일도 해맑고 어여쁜 그녀와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다. 어렵사리 하나 얻은 마코의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보았다. 어쩜 이렇게 미소가 맑을 수 있는 걸까. 마코와 사귀게 되었으면서도 아직 현실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월요일 저녁부터 계속 문자를 날렸다. 화요일 만남을 위한 약속을 잡기 위해서였다. 병원일이 바쁠 테니 바로 회신받는 건 아예 기대도 안 하고 그냥 쉬는 시간에 보고 시간 날 때 마코의 회신을 받기를 기대했을 뿐이다. 월요일 퇴근 후부터 몇 시간 간격으로, 내일 뭐 먹고 싶은지, 몇 시에 만나면 좋은지, 어디서 만나면 좋은지, 일은 바쁘지 않은지, 시간 나면 회신 달라고, 오늘 많이 바쁜가 보다고, 피곤하면 내일 연락 달라고...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회신이 없는 가운데 말이다.
켄타로가 그녀의 회신을 받은 것은 화요일 오전 10시가 다 돼서였다.
아, 켄짱. 미안해요. 응급환자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어요. 나 자고 일어나서 다시 연락할게요. 우리 오늘 저녁 6시에 '이나카 야키도리(시골 꼬치구이)'집에서 만나요.
출근하여 열심히 이메일을 쓰고 있던 와중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코의 문자를 받았다. 어제 늦게까지 잠들지 못한 그는 이 문자를 받자 반가운 마음보다는 짜증이 갑작스레 솟구치는 걸 느꼈다. 마코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렇게까지 끌려다녀야 하는 것인지 의문마저 들었다. 분명 마코도 자기를 똑같이 많이 좋아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행동으로 나오는 건 아무래도 균형감을 잃은 게 아닌가 싶었다.
켄타로는 마코의 회신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이 조금은 옹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연락하는 빈도를 볼 때 이렇게 일방적인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 조금 더 상대를 배려해주지 못하는 걸까. 그냥 틈날 때 핸드폰 한 번 꺼내서 체크하고 간단히 대답해 주어도 될 텐데 왜 그런 작은 일을 마코는 하지 못하는 걸까. 마음이 불편하고 화가 나서 평상심을 지키기 어려웠다.
동료들이 같이 '가지덮밥정식' 잘 하는 데가 있다며 같이 가자고 했지만 일이 있다고 빠졌다. 켄타로는 혼자서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 차를 몰아 근처 공원을 향했다. 답답한 마음을 사무실에서 가눌 길이 없어 점심도 먹지 않고 그냥 무작정 바람을 쐬러 나간 것이다.
켄타로가 향한 공원은 키타큐슈의 도시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타카토야마 전망대가 있는 곳이었다. 원래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가슴 한 구석이 막힌 지금 뭔가 탁 트인 곳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한낮이었지만 구름이 제법 끼어 있어 늦봄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날씨였다.
와카토 다리가 보이는 이곳이 좋았다. 퍽이나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저녁 무렵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지만 낮은 한산했다. 근처에는 숲이 오솔길을 품고 있었고 어디선가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마코의 무심함에 심난했던 마음도 어느새 평화롭게 가라앉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노래 제목)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성가 부르기를 좋아하는 켄타로의 입에서 절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 갓등중창단이 곡을 입힌 아름다운 노래였다. 아무도 들르지 않는 고즈넉한 한낮의 작은 산 정상 전망대는 그를 무대에 선 CCM 가수로 만들었다. 무거웠던 마음은 상큼한 봄날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는 마코에 대한 서운함을 다시금 사랑으로 물들게 해 주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