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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May 05. 2016

제가 혹시 뭘 잘못했습니까?

그 남자

                                                                              (대문 사진 taken by Jay. Choi)


 음~~ 쾌적한 우리나라의 오월. 중국 광저우의 30도 가까이 이미 여름이 된 날씨를 경험하고 온 나에게 조국은 너무나도 기분좋은 공기를 선사해 주었다.


  오랜만에 부모님댁에 들러 이틀을 묵고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도 한보따리 풀어 놓으며 값진 시간을 보냈다.


  점심도 부모님과 함께 밖에서 제법 맛있는 갈비 - 미국산이라고 들었다 - 와 된장찌개로 배를 채우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밖을 내다 보니 어제까지 비가 나리던 날씨가 오늘은 눈이 부시도록 화창하고 태양빛이 차앞유리에서 강렬히 흩어지고 있었다.


  부모님 댁으로 돌아온 후 거실에 앉아 쉬고 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렇게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없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흐뭇하고 나 스스로 행복한 사람인 양 여겨졌다.


  졸음이 왔다. 백일된 아기를 재우다 나도 잠이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낮잠을 늘어지게 잤다. 깨보니 벌써 저녁먹을 시간.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아내는 아기 때문에, 좋아하는 이 나라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게 아쉬웠는지 잠시라도 좋으니 아기랑 셋이서 바람을 쐬고 오자 했다. (아내는 외국인이다.)


  뭐 대단한 바람을 쐬자는 게 아니었다. 그저 커피숍에 가서 와플 하나 먹고 음료수 한 잔 마시고 싶은 것이었다. 아버지의 차를 빌려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를 한 바퀴 둘러보다 동물원 커피 라는 간판의 커피숍을 발견했다.


  막상 도착해서는 와플을 주문하지 않고 나는 아이스크림을 아내는 딸기 스무디를 시켜서 소박한 바람쐬기를 시도했다. 아기가 생기자 이런 사소한 데이트도 결코 쉬운 일이 될 수 없었기에 우리는 약간 들뜬 기분으로 그 시간을 감사히 보냈다.


  아기가 자다가 깨는 바람에 울기 시작하는데 커피숍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딸랑이도 써보고 가짜 젖꼭지도 물려보고 하다 울음을 그치지 않아 눕혔던 애를 세워서 안아 들었다. 최근에 손을 타기 시작한 이 갓난 아기는 바로 울음을 그쳤다. 세워서 안아 주면 주변 구경을 더 편하게 할 수 있어 좋아한다. 팔이 좀 아프지만 울음을 그치게 하는 데 효과가 크다.


  그렇게 짧은 바람을 쐰 후 내가 먼저 주차해 놓은 차를 찾으러 나갔다.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대로로 나왔다. 잠깐 주행하다가 적색 신호에 걸려 정차했는데 몇 초 정도 지났을까 뒤에서 빵 하는 경적이 울렸다.


  신경이 쓰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인적이 드물고  차량 통행도 적은 도로였다. 혹시 그래서 그냥 지나가자고 경적을 울렸나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신호가 녹색으로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자말자 주행을 재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회전을 했는데 아까 뒤에서 경적을 울렸던 그 차가 뒤를 바싹 붙어 같이 우회전을 하는 거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차간 거리도 거의 없이 차를 붙여 따라왔다. 너무 위협적으로 느껴져 차선을 오른쪽으로 옮긴 후 차를 세웠다.


  뒤에서 쫓아오던 차는 잠시 같이 정차하는 듯하다 내 차를 왼쪽으로부터 추월하여 내 앞쪽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 나는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듯했다. 내 오른손은 반사적으로 핸들의 크락션을 향했고 거칠게 경적을 울리기에 이르렀다.


  앞차의 운전자가 차문을 열고 나왔다. 30대 초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 온갖 감정들이 엉켜 붙어 휘리릭 뇌속을 훑고 지나갔다.


  '저 자식이 한 번 해보겠다는 건가? 지가 잘못해놓고 지금 나한테 따지겠다고 차문을 열고 나오는 건가? 혹시 저거 건달 아니야?

한 판 붙어야 하는 건가?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있었나? .... '


  내 얼굴은 이미 흥분으로 붉어진 상태였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하여 팽팽해졌다. 이 좋은 날 하필 이런 싸움에 말려드나 하는 재수없음에 대한 한탄도 순간 스쳐 지나갔다.


  남자가 걸어서 내쪽으로 왔다. 나도 운전석  창문을 열었다.


남자가 말했다.

" 저, 제가 혹시 뭘 잘못했습니까?"


내가 말했다.

" 왜 크락션을 울리셨어요? "


남자가 응답했다.

" 아, 저도 그 소리 듣긴 들었는데 저는 아니에요. 제가 크락션 울리지 않았어요. "


  아니 이게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분명히 뒤에 그 차 밖에 없었는데, 그넘의 경적 때문에 열받기 시작한 건데.


내가 말했다.

" 아!   그랬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전 그쪽에서 크락션을 울리신 줄 알고 그만."


그가 말했다.

" 아뇨. 신호 잘 지키고 계신데 그러면 안 되죠. "


 나는 연신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고 그 남자는  자기가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며 두 팔로 엑스자까지 그려 보이며 자기가 아니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마지막에는 나의 거듭되는 사과를 듣고 조용히 물러가 주었다.


  차 경적이란 게 요물단지다. 경적을 울리게 되는 사람이나 그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나 기분 나쁜 상황일 경우가 많다.


  후회가 됐다. 경솔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그 30대초의 남자는 좀 멋지게 보였다. 자기가 경적을 울리지 않았는데 나의 거친 경적 소리를 듣고 차에서 내려 한다는 말이 "제가 혹시 뭘 잘못했습니까?"였다. 그것도 상당히 공손하게 말하는 거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뒤에서 바짝 붙어 쫓아왔다고 생각한 것도 실은 나만의 오해였는지 모르겠다. 신호를 잘 지키는 와중에 뒤에서 크락션 소리를 들으면서 내 감정이 이미 흔들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뒷차의 모든 정황이 나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만일 내가 그 남자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좀 억울해서 한 마디 했을 것 같다. 왜 잘못도 없는 사람한테 그랬냐고.


  그 사람의 매너와 말투가 지금도 선명하다. 오해를 풀기 위해 부드러운 말과 제스처로 다가왔던 나보다 젊은 남자. 아, 부끄러워라!

난 아직 다혈질인 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 운전할 때 성질 좀 죽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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