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드레아 Nov 30. 2015

(단편소설) 비행기 안에서

10월 어느 멋진 날에....

2009년 10월

    

  남경에서 광저우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저녁 7시 반에 출발하는 비행기였으나 8시가 넘어서야 이륙했다. 30분이니 아주 양호한 편이라 해야겠다. 저녁이라 그랬는지, 하루 종일 흐리고 어두운 날씨 탓이었는지 사람들은 대개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이제 두 시간 넘게 가야 하니 잠을 좀 자두어야지. 안전벨트를 하고 의자를 자기 좋게 약간 뒤로 젖혔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좁은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려면 자는 게 상책이다.   


  어느새 잠들었을까. 뒤에 앉은 여자가 자꾸 의자를 건드리는 것 같아 잠을 깼다. 경고 차원에서 몸을 살짝 뒤로 돌려 여자를 쳐다보고 바로 몸을 바로 했다. 바로 그때였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여자는 또 내 의자를 발로 건드렸다. 나는 다시 여자 쪽을 재빨리 보고 몸을 바로 했다. 그 순간 기체는 놀이기구가 급강하하듯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 이 느낌. 아, 별로 안 좋아. 가슴 철렁하는 이 싫은 몸의 반응.  


  내 뒤에 앉아 있던 여자는 괜히 내 의자를 건드린 게 아니었다. 내가 잠에서 깨기 얼마 전부터 기체는 난기류를 만나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나지막이 비명을 질렀고, 발로 내 의자를 건드리거나 손으로 내 의자에 자기 체중을 실어 지탱하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여자는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필시 놀이기구를 못 타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내 옆에 앉아있던 중국인 직원도 갑자기 고개를 앞 의자에 처박더니 눈을 감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전에 이란으로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난기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대개는 몇 분 지나면 난기류를 통과해서 기체의 흔들림이 잦아들곤 했었는데  그때는 10분 이상 흔들림과 급강하가 지속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속이 메스꺼워지고 토할 것 같고, 견디기 힘들어진다. 바로 지금 그런 상황에 다시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나는 어서 빨리 이 안 좋은 상태를 벗어나고 싶었다. 주변의 많은 승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과 여자들 그리고 비위가 약한 몇몇 남자들은 낮은 소리로 신음하며 어서 난기류를 벗어나길 갈망하는 모습이었다. 기내 안내 방송을 통해 기장이 승객들을 안심시키려는 목소리가 들렸다. 현재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니 승객들은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승무원들의 지시를 따르십시오. 속이 안 좋으신 분들은 전면에 비치된 위생봉투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내 옆의 중국인 동료는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달래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자신들도 힘겨워하고 있었다. 나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떡하지. 아, 어떡하나. 이러다 토하겠다. 아… 아부지! 어무니! 저, 힘들어요. 이러다 비행기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닐까. 나 좀 살려줘. 죽겠다..  


  바로  그때였다. 정말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앞쪽  오른편 복도를 향했다. 모두들 괴로워하고 있는 순간에 어떤 여자가 복도로 나와 의자를 잡고 뒤편을 향해 섰다. 생김새를 보니 동양 사람이었다. 승무원들이 그를 만류했으나 그는 중국어로 승무원들을 안심시키고 복도에 서서 양쪽 의자를 붙잡고 뒤편의 승객들이 다 보이도록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 여자가 무얼 하려는 걸까.   


 “ 여러분, 힘드시죠? 제 생각엔 난기류를 5분 안에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아요.”  

 웬걸 그 여자가 그 얘기를 하는 순간 기체가 평안을 되찾았다.   


 “ 어마,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금세 비행기가 괜찮아졌네요.”  


 저 여자 뭐하는 사람일까. 혹시 파일럿 아닐까. 아니면 의사? 아니, 어쩌면 우주 비행사?   


 “ 좀 있다 또 비행기가 흔들려도 안심하세요. 제가 이 구간을 자주 오가는데 자주 이래요. 근데 좀 길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시는 걸 봤어요.”  


 “ 자, 비행기 다시 흔들리기 전에 제 할 일을 할게요. 저는 남방항공 그룹의 계열사인 남방 엔터테인먼트 유한공사의 루허빙 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비행기 흔들리는 거 생각하지 마시고 저를 봐주세요. 제가 노래를 한 곡 불러드릴게요.”  


  여자는 복도에 서서 영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선율이 귀에 익었다. 내가 평소에 즐겨 부르던 노래였는데, 이게 영어로 된 가사가 있었는지 몰랐다. 시크릿 가든의 음악에 가사를 붙여 조수미 씨와 김동규 씨가 함께 불렀던 그 노래. 시월 어느 멋진 날에.    


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아아아...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함께 노래 동아리를 하던 대학 친구의 결혼식 축가를 부르며 ^^

  이상 제가 중국에서 근무할 적 자주 중국 내 출장을 다니며 비행기 속에서 난기류를 만나 힘들었을 때를 떠올리며 상상을 보탠 이야기입니다. 비행기에서 노래를 부른 여자의 이야기는 제 상상이지만 왠지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그렇게 승객들을 안심시켜주는 놀라운 광경을 접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H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