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인 친구 알리
종합상사에서 13년간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바로 페르시아의 왕처럼 생겼던 알리 K.다.
앞서 샐러리맨과 사업가 2편과 3편에서 소개한 바 있지만 이 친구와 함께 했던 삼 년의 러시아-이란 빌렛 비즈니스는 일적으로도 흥미진진한 경험을 가득 선사했고 삶의 지평을 확 넓혀 주었다.
두바이를 거쳐 테헤란 공항으로 이란에 입국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세 번의 이란 출장을 다녀왔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이 몇 번째 출장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에스파한의 한 철강업체를 방문했을 때이다.
당시 카스피해 북쪽, 러시아 남단에서 철강 반제품 빌렛을 선적하여 배로 카스피해 남쪽, 이란 북단으로 운송 판매하는 삼국간 무역이 바로 내 담당이었다. 매달 4-5만 톤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이란 시장에는 오로지 이 사람을 통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에스파한 철강업체의 사장 이하 경영진 대여섯 명이 테이블 반대편에 도열해 앉았다. 마치 아그리파 상처럼 생긴 덩치 큰 사내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테이블이 작게 느껴졌다.
그날의 주요 의제는 신용장 , Letter of Credit의 조속한 개설 건이었다. 당시 빌렛의 시장 가격이 엄청나게 빠졌었다. 즉, 우리와 바이어인 에스파한 철강업체가 계약을 체결한 직후 가격이 톤당 수십 달러나 빠지는 바람에 바이어는 구매한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다. 1만 톤의 약 300만 불 (한화 약 30억 원 상당) 어치의 계약이었다.
바이어로서는 이 계약을 물리고 시장에서 다시 당시의 현 시세로 구매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었다. 수십만 달러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계약 취소에 따른 페널티는 총 계약금액의 2%인 6만 불 수준이었으니 계약을 파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알리와 나는 어떻게 하든 계약이 유지되고 바이어로 하여금 빨리 신용장을 열게 하는 것이 이번 출장의 주목적이었다. 논리가 필요했다. 바이어를 설득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경우 업계에서 주로 쓰는 논리는 장기 협력 관계를 고려해 달라는 것이다. 알리에게 현재 이 계약의 End Supplier인 러시아 U 사가 얼마나 중요한 공급처인지 설명했고 알리는 페르시아어로 바이어 설득에 들어갔다.
"가능하면 빨리 LC(신용장)를 열자. 이 러시아 공급처의 품질과 규모는 당신들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지금 당장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나중에 이보다 더 큰 이익을 취할 수 있다. 내가 이미 경험해 봐서 아는데 이 업체는 반대로 가격이 폭등해도 계약을 취소하지 않고 낮은 가격의 계약을 그대로 이행하는 곳이다. 믿어라. 앞으로 당신 회사가 라인을 증설할 계획도 있는데 이만한 양질의 공급 파트너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느냐. 만일 이번에 계약이 파기되면 더 이상 이 업체와 거래하는 것은 힘들어진다. 나와 대우인터내셔널이 앞으로 더 좋은 조건의 빌렛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믿고 같이 가자. " 블라블라블라...
위에 언급한 이야기 외에도 그는 이란 경제와 건설경기 전망에 대한 이야기부터 세계 철강시장의 흐름과 시장 가격 예측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의견을 피력했다.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지극히 사교적인 대화를 유도하며 심각한 주제로 인해 딱딱해지기 쉬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테크닉을 발휘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2시간가량을 쉼 없이 돌진했다. 페르시아어와 영어를 넘나들며 그는 말의 육박전을 치러내고 있었다.
비록 알리가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바이어가 신용장을 열게 된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어느 정도 가격을 깎아달라는 요청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워낙 계약 단가와 그 당시 시장 가격 차이가 많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동남아 시장에서 이런 경우에 바이어들이 땡깡을 부리며 계약 이행을 거부하거나 가격 인하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이어가 가격을 깎자고 나올 경우에 얼마나 그 폭을 줄이는가 하는 것이 트레이더인 우리의 관심사였다.
기나긴 미팅이 끝났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중간중간 경영진들과 꽤 열띤 토론이 오고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알리는 동요하지 않았고 엄청난 열정과 달변으로 분위기를 압도했으며 좌중을 리드해 나갔다.
결과는?
가격 조정 없이 일주일 안에 신용장을 개설하기로 했다. 이번 출장길이 환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잠시 회의실을 나와 핸드폰으로 본사에 바로 보고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결과를 말씀드리자 팀장님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완전한 수세에 몰렸던 우리는 역전의 용사가 되었다. 아무도 그런 상황에서 신용장이 제대로 열리리라 기대하지 못했고 바라는 것마저 무리라고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에스파한 바이어와의 미팅뿐 아니라 약 오일의 이란 출장 중에 알리는 내내 그렇게 지칠 줄 모르는 정력으로 회의의 대화를 주도했다. 평소 전화로 또 이메일로 설전을 벌이던 그가 실로 존경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을 맞대며 어려운 출장길에서 며칠을 함께 보내다 보니 그가 너무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바로 어제였다. SNS로 그의 사진을 받은 것이. North Teheran Mountains에 올라 찍었다는 그의 모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올해 일본으로 나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가 아내가 병이 생겨 방문이 취소되었던 적이 있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다시 계획을 세워 오겠노라고 했다. 그리운 이국의 친구를 올해는 볼 수 있으려나. 테헤란 어느 산기슭에서 벌집 조각에 차 한 잔을 나누던 그와 올해는 일본의 온천지를 함께 방문해 회포를 풀 수 있기를 흐뭇하게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