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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Sep 02. 2023

버리고 받아들이고 채워나가는 삶

50세 넘은 나는 오늘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

목표로 한 조기은퇴 시점까지 3년 반… 사실상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다만, 항상 계획이란 것이 어떤 변수를 만나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에, 그저 손 놓고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려 하지는 않는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금융시장의 지나친 변동성이나 3년 반동안 꾸준한 현금흐름 제공을 통해 내 조기은퇴를 위한 재정플랜의 방점을 찍어줄 지금의 직장에서의 안위 문제 등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시작이 될) 끝이 보여서일까? 요즘 마음은 차분하고 편안한 편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적당히 버리고 받아들이며 내려놓을 수 있는 내공이 단단해진 게 가장 큰 비결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과하지 않게 꾸준히 채워나가는 삶의 방식은 오늘의 나를 지탱하고 조기은퇴 이후 내 생활을 풍요롭게 해 줄 가장 큰 요소가 될 것이다.


행복은 큰 노력과 의지력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기, 휴식과 내려놓음에 있다.
긴장하지 마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행복 추구가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할 뿐...
좋고 나쁨의 경험이 실재한다고 믿지 마라.
그것들은 무지개와 같다.

바라보고 놓아주고 자유로워져라
<받아들임> 타라 브랙 (Tara Brach)


최근 몇 년간 나는 꾸준히 뭔가를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과 오만을, 남 탓 하며 배려와 공감이 부족했던 이기적인 마음을,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는데 방해가 된 쓸데없는 고집과 자존심을, 너무 잘하려다 보니 힘이 들어가게 만들었던 부질없는 완벽주의와 지나친 욕심을, 편견과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죄다 내다 버리고 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지나고 보면 결국 나 자신을 괴롭게 했던 감정들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버려도 버려도 어느새 다시 솟아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다. 앞으로도 버릴 게 너무 많다. 매일의 루틴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몰입을 넘어 또 하나의 집착이 되어 버린 삶의 방식, 여전히 가끔씩 불쑥불쑥 찾아오는 뜻 모를 불안과 걱정, 너무 빨리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해버리는 성급함과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까지. 내 깜냥보다 훨씬 많이 내 마음 여기저기에 붙어 끊임없이 나를 어지럽게 하던 이 녀석들을 조금씩 떨궈내고 있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들을 버리는 한편, 또한 많은 것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먼저, 아직은 건강에 자신이 있다지만 갱년기 증상과 함께 요즘 조금씩 신체나이가 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기에 눈도 침침해지고 여러모로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일찍부터 많은 혜택을 받아 젊은 나이에 임원 역할도 10년 가까이하다 보니 여전히 주변으로부터는 몇 년 전 한국에서의 직함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조기은퇴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부터 이제는 진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마음가짐으로 과거를 내려놓고 지금을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의 직장에서는 그 간의 경험 등에 대해 충분히 좋은 대우를 받고 있지만, 내 커리어에서는 흔하지 않던 나보다 연하인 일본인 상사를 모시고 있다. 어쩌면 남은 기간, 나보다 훨씬 더 어린 친구들에게 뭔가의 업무스킬을 배워야 할 수도 있다. 언젠가 ‘쪽’ 팔리고 ‘가오’ 안 사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럴 때를 대비해서 가끔씩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미리 연습을 하고 있다. 조직에서는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기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지만, 때로는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나의 노력이 인정을 받지 못해도 크게 개의치 않으며 그저 또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려 하고 있다. 내려놓고 받아들이니 스트레스가 확실히 줄어든 느낌이다.


매일 집을 쓸고 닦아도 하루만 지나면 어디서 왔는지 모를 먼지가 쌓이게 되는 것처럼, 결코 한번 버린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름 열심히 내려놓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잠깐 가벼워진 그 마음에 다시 공허함이 깃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고 뛰며 틈나는 대로 나만의 방식으로 명상을 하며, 가끔씩은 울고 있는 내 마음속 아이들에게 말을 걸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절제하되 집착하지 않는 오늘을 살며, 과하지 않을 만큼만 조기은퇴 이후 내 삶의 모습을 그려보며, 소소한 일상에서의 소박한 기쁨과 고마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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