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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Oct 21. 2023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면

결국 지금 어떻게 할 것인가

어제 우연히 브런치에 올라온 <10년 전 과거로 돌아가기 vs. 10억 받기>라는 짧은 글을 읽고 나서 새삼스레 생각해 봤다.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50을 넘긴 나이지만, 이제는 덜 방황하고 덜 불안해할 만큼 경제적 여유와 마음의 안정을 이루었기에 나이 듦이 나쁘지 않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나는 ‘10억 받기’를 선택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갈등이 일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절실할 만큼은 아니어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했다.

https://brunch.co.kr/@lovebrander/83​​


당연한 거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켜켜이 쌓여서 이루어져 있다. 그동안 노력하고 희생했던 시간들은 지금 누리고 있는 여유와 안정의 뼈대가 되었지만, 이런저런 골짜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 몇 개의 그림자도 덤으로 얻었다. 수많은 실패와 실수, 그로 인해 과도하게 실망하고 좌절했던 날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들에도 걱정과 불안으로 나 스스로를 괴롭혔던 날들. 늘 뭔가의 욕망에 사로잡혀 앞만 보고 달리면서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소홀했던 무수히 많은 순간들. 잊고 싶은 날들과 지우고 싶은 순간들의 잔해를 밟고 지나 아직도 미숙하지만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프고 슬프지만 뿌듯하고 고맙기도 하다.


좀 더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면 힘들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단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다. 나를 사랑해 주고 걱정해 주고 진정으로 응원해 줬던 가족들에게 내가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예민한 성격에 멘털도 그다지 강하지 못했던 터라 나 하나 간수하기에도 벅차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늘 미안한 아내에게 듬직하고 믿음직한 남편 노릇 제대로 해보고 싶다. 또래보다 일찍 결혼해서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덜컥 아빠가 되는 바람에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한 첫째 아이에게 사실은 아비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지도 보여주고 싶다. 말수가 적고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유난히 강했던 아이가 혹시나 너무 일찍부터 ‘인생은 혼자’라는 가치관이 형성돼 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렇듯 내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다가 가끔씩 파도가 치면 한 번씩 일어나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 만큼은 과거로 돌아가 전부 리셋하고 싶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면‘이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를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직 만시지탄(晩時之嘆)할 필요는 없음에 어처구니없는 위로를 받는다. 비록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비교적 건강하신 팔순의 노모, 많은 사위사랑을 보여주신 장인/장모님, 하나뿐인 남동생, 그리고 아내와 두 아이들에게 더 잘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과거를 반추하며 ‘뭣이 중헌디’를 깨달았으니 이제 실천할 일만 남았다. 오늘은 양가에 전화부터 드리고, 좋은 남편 아빠로서의 소소한 역할을 지금 당장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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