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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어앤디어 Sep 10. 2024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려면

나는 부모님의 건강 문제로 인해 초등학교 시절 시골로 이사하게 되었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 처음에는 나를 보더니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 가해 학생들은 나를 친구로 삼겠다는 미명 아래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농담이야"라는 가벼운 장난이었지만, 점차 조롱과 비난으로 변해갔다. "너 외지에서 왔잖아, 여기서 친구를 만들기는 힘들 거야"라며 나의 정체성을 경시했다.


어느 날은 청소시간에 교실 바닥에 떨어진 쪽지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나를 향한 비난과 욕설이 가득 차 있었고, 점점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나를 조롱하며 나의 외모나 말투를 소재로 삼아 희화화하며 장애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얼떨떨해졌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수업 중에도 친구들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앉거나, 나를 비웃으며 수군거렸다. 다른 친구들은 무리 지어 앉아 웃고 떠드는 반면, 나는 혼자서 밥을 먹어야 했다. "몸에서 더러운 냄새가 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를 향한 동급생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식사를 거르는 날이 많아졌고, 배고픔을 참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갔다.  


화장실에서 지갑 안의 현금을 뺏기고, 실내화가 세 번이나 도난당하는 등 괴롭힘은 계속됐다. 학교는 나에게 점점 더 두려운 장소가 되었다.


그런 괴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길가로 나갔고, 달려오는 차의 소리가 내 귀에 쟁쟁하게 들렸다. 충격이 지나간 후,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침묵에 싸였다. 그때 느낀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회복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무릎에 생긴 큰 흉터는 내 마음의 상처를 상기시켰다. 매일 아침 그 흉터를 바라보며, 나는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찾아야 했다.


그날 저녁, 나는 부모님께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아 혼자 고민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결심은 쉽게 실천되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이 모든 고통을 견뎌내려 했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하며 다른 친구들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그 작은 행동은 내 마음의 방어 기제가 되었고,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를 향한 따돌림은 인터넷 공간으로까지 번졌고, 싸이월드에 나와 가족을 비방하는 글들을 올라왔다. 그 이후 작은 일부터 시작해,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부모님은 처음에는 놀라셨지만, 나의 아픔을 이해해 주시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나 그 후로도 나는 여전히 아픔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했다. 학교는 내가 겪고 있는 괴롭힘에 대해 무관심했고,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학교는 실추된 명성을 우선시하며 내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 나를 괴롭히는 가해 학생들은 지역에서 연고가 있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학교는 "네가 문제야", "네가 잘 적응하지 못한 거다"라는 식의 경시와 비하로 일관하며 여전히 나를 방치했다. 나는 학교 측의 무관심에 지역 교육청에 민원을 넣기로 했다. 하지만 교육청의 반응도 냉담했다. "그런 일은 없었다"는 말로 문제를 방관하였다.


정신적인 피해는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았다.


이런 피해는 8년간 지속되어 나는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했고,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혼합형 불안과 우울장애 진단을 받아 6개월간 약물 치료를 받았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아픔을 털어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두려웠고, 누군가에게 나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몇 가지 방법을 통해 그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아픔을 털어놓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계기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한 상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상담 선생님과의 만남이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노력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차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쉬워졌다.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친구가 없어요. 매일 혼자 밥을 먹고, 아무도 저를 이해해 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자 선생님은 나를 바라보며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우연히 같은 경험을 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와 비슷한 감정을 겪었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 후, 나는 점차 내 안의 아픔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사건은 그 당시 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 시절, 학교폭력은 지금처럼 큰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냥 애들끼리의 장난'으로 치부되었고, 피해자들은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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