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은 미니멀리스트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햇볕 냄새를 머금은 푹신한 이불, 여유로운 샤워 후 남은 스크럽제의 잔향과 같은 형체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나의 방엔 쓸모없는 물건들이 가득 들어찼다.
그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옷이다. 계절이 바뀌고 옷 정리를 하다 보면 이 옷을 내가 언제 샀지? 하는 옷들이 꼭 있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대게 낡지 않은 새 옷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런 옷들이 발견되면 어딘가 찜찜한 마음이 든다. 불필요한 소비를 한 기분. (사실 맞다)
충동구매는 꽤 자주 있는 일이다. 물건이 떨어지기 전에 사놓는 걸 좋아해 올리브영과 같은 드럭 스토어에 가면 필요한 물건을 비롯해 향수, 핸드크림 등 그저 패키지, 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꼭 필요한 게 아닌데 한 두 개를 더 구매한다.
오프라인 구매라면 채워지는 장바구니를 보며 자제라도 하지, 온라인 구매를 하면 일정 금액 이상 무료배송을 해주기 때문에 그 금액을 맞추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를 하기도 한다. 예전엔 어차피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에 마치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 같았지만 막상 상품이 배송 오면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건을 미리 사놓는 것의 문제는 내가 그 물건을 산 것을 까먹고 또 물건을 구매하기도 하고,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그 상품이 써보고 싶어 져 내가 산 물건에 대한 애정이 반감된다는 거다. 물건에 대한 애정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사용하는 물건에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물건값으로 지불한 금액 이상의 값어치를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인형을 사서 모았다. 어렸을 땐 인형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학원을 같이 다니던 친구가 인형을 좋아했다.
학원 가기 전 같이 소품샵을 구경하며 하나 둘 구매하다 보니 어느새 책장을 모두 채운 것이다.
그 친구는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인형을 추억하고 그땐 갖지 못했던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큰 만족감을 얻었지만 나는 단지 포장받은 봉투를 들고 다니는 일이 즐거웠을 뿐이다.
당시 나는 일주일 용돈으로 5만 원을 받았고, 저녁을 사 먹기도 빠듯했지만 먹고 싶은 메뉴를 먹지 않고 편의점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운 채 인형을 사 모았다.
하루가 끝나고 집에 오면 사그라드는 기쁨을 위한 1~2만 원가량의 소비보단 한 끼 식사비용으로는 비싸서 포기한 연어 초밥 세트를 먹는 게 더 좋은 소비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정작 그때 모은 인형들은 입시가 끝나고 가득 찬 책장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 모두 버렸다.
성인이 된 후 인형에 대한 욕심은 사라졌지만 생필품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다. 물티슈, 클렌징 워터, 핸드크림 등 다 사용한 후 구매해도 전혀 지장 없는 것들인데 하나를 다 쓰기도 전에 사놓았다.
그 속엔 불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일이 끝나고 필요해지면 어쩌지?’
‘이 제품이 단종되면 어떡해’
미리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걱정과 함께 물건들을 쌓아놓기 시작했다.
물건들은 이전엔 인형들로 채워져 있던 ‘그’ 책장에 쌓여있다.
이제 욕심 가득 채워진 책장을 보는 게 피곤하다. 불안한 마음에서 오는 충동적 소비가 아닌 안온한 마음을 얻을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미니멀리스트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