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꾸준히 예민할 거 같은데

아무튼, 예민함

by 단아

최근 굉장한 노잼 라이프를 영위하고 있습니다. 여행도 안 가, 놀러도 안 가, 사람도 안 만나, 출근-집-부업-잠의 연속이었거든요. 시간 나면 누워서 책 보고 웹툰보고. 뇌 여유 있으면 영화도 보고. 짬 내서 브런치에 끄적이고.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워요. 외려 너무 이렇게 지내다 보니 어쩌다 한 번 있는 회식, 모임이 살짝 버거워집니다. 아싸 재질인 건 알고 있었다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무튼 며칠 전 점심 회식 비슷한 자리가 있었어요. 무릇 사람이 모이면 제법 즐거운 구석도 있기 마련이고, 회식은 가벼운 지갑을 염려하지 않고도 맛난 것을 즐길 수 있는 이점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나치게 외딴섬처럼 살아서였을까. 평소보다 이른 퇴근을 했음에도 바로 낮잠을 청해버립니다. 아, 고단하더라고요. 나약한 것. 고작 3시간 모임에 지쳐 나가떨어지다니. 불평불만 게이지가 올라갑니다.


주야장천 주장했던 '그러려니'가 참 쉽지 않습니다. 네가 피곤할 수도 있지, 그럴 수 있지. 하며 넘기면 될 일을 부득부득 가져와요. 또, 예민해 빠져서 그렇다면서 구시렁구시렁. 어딘가에 숨어있던 조급함도 속삭입니다. 예민한 거 싫지? 이거 때문에 힘든 거 스킵하고 싶지? 그냥 전처럼 예민함 잡도리해~. 예민함과 함께 잘 살아보겠다 결심한 지는 2년, 잡도리하며 살아온 시간 3n 년. 기간의 차이가 어떤 것이 관성이고 고정값인지 분명히 보여주지요. 사람은 참 익숙한 것을 좋아해서 신경 쓰지 않으면 기존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해요. 그게 뇌의 기본 메커니즘이기도 하고요. 이런 상태에서도 내담자분들에게는 힘들지만 (예민함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말하는 스스로에게 2차 현타가 옵니다. 인간아 너나 잘해라 너나.


푸닥거리를 마쳤으니 도의상 정리 한 번 해보겠습니다. 예민함은 나쁜 것인가? → 놉. 기질에는 옳고 그른 것은 없다. 그렇다면 예민함은 불편한가? → 예스. 하지만 조절할 수는 있다. 예민한 자기 자신이 싫은가? 네...... 니요(...). 솔직히 좋진 않아요. 하지만 좋아하지 않아도 친절하게 대할 수는 있잖아요?! 싫어하는 상사에게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고 같이 밥 먹어줄 수 있으니까요. 내가 (예민한) 나를 썩 좋아하지 않더라도 힘들면 재워주고, 슬프면 맛있는 거 먹여주고, 평소 좀 더 좋은 음식 챙겨주고, 지루하면 재미있는 것도 보러 가고 하면서요. 요 정도로 담백하게 시작하면 되죠 뭐. 가진 것을 지나치게 억누르려 하거나 애써 부정하려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에요. 차라리 마른세수 벅벅 하고 아휴 쯧쯧 하면서 어깨 한 번 두드려주는 것이 백 번 천 번 낫습니다. 아, 오늘도 예민함 할당을 채웠군. 참 부지런하기도 하지 하면서요.


이 지난한 과정에 대해 구태여 다시 짚고 넘어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돌보는 일에는 지름길은 없어요. 그러니까 이 기술 하나면 우리네 고민 완벽 해결! 1회 만에 예민함 완전 타파! → 이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일수록 더 그렇지요.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영양제 하나로, 드라마틱한 신약 투약으로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매일의 작은 선택과 행동이 쌓여 우리를 만들어요. 건강한 음식을 먹고, 꾸준히 수준에 맞는 운동을 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해주어야 그럭저럭 건강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듯 말입니다. 아, 물론 기술은 필요해요. 중요하죠. 예민함으로 짜증이 치솟을 때 다양한 심리적 기술을 익혀 단기적으로 완화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술이 다는 아니에요.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카드인 것이지, 본질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좀 더 중요합니다. 근본을 다듬는 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깊은 수준의 수용이 아니라도 좋아요. 좀 봐주는 거죠. 아, 예민하게 굴어도 봐줄게. 다음엔 좀 다르게 해 보자. 이런 방식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별 거 아닌 거 같고, 정말 간단하게 보이지만 어쩌면 이게 전부예요. 심리상담이나 마음을 보살피는 일은 모두 '자기 수용'을 향해있으니까요. 찬찬히 들여다보고 매일 한 톨씩 나를 이해하는 일은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어요.


적어놓고 보니 이것은 다 저를 위한 내용이군요..! 예사롭게 받아들이지 못하니 스스로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조금 더 쉽고 편안한 방법으로, 좀 더 내게 닿는 표현으로 정리한 것이다 싶어요. 저도 예민한 제가 아직도 어렵습니다. 근데 예민함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기록을 쌓아나가고 하다 보면 분명 조금씩 더 편안하겠지 믿어보려고요. 믿어야지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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