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고 진하게 사랑하는 일

아무튼, 예민함

by 단아

언젠가부터 미디어에서 사랑에 대한 격언이 들려왔습니다. '혼자서도 우뚝 설 수 있어야 둘이서 함께 할 수 있다', '외로워서가 아닌, 안정적인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와 같은, 이상적이고 반듯한 마음 상태를 우선적으로 갖춰야 함을요. 일부 동의합니다. 널리 퍼지는 이유도 알 거 같아요. 누군가를 초대하기 전 집안을 정갈하게 해 놓으면 좋으니까요. 다만 어느새 '그러지 않으면 안 돼'라는 당위가 짙어져 텁텁한 느낌이 들어요. 여기에 애착 이론도 한몫 거들지요.


애착은 양육자 또는 특별한 사회적 대상과 형성하는 친밀한 정서적 관계를 뜻해요. 사람은 빼도 박도 못 하는 사회적 동물이거든요. 나와 타인과의 관계, 그 관계 안에서 경험하는 여러 느낌, 생각, 감정들이 모여 타인과 대인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틀이 된답니다. 애착이라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해요. 즉 아동기(0~6세) 때 주 양육자와 친밀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었던 사람은 청소년기, 성인기 이후에도 안정적인 관계 경험이 지속되겠군! 하고 예측할 수 있어요. 안정/불안정 회피(회피형)/불안정 저항(양가형)으로 크게 구분하기도 한답니다. 여기서 잠깐. 심리학의 맹점과 k-특성의 결합은 엄청난 극단성을 초래하기도 하는데요. '나는 불안정 애착이네. 망했어.', '불안정 애착은 안 좋은 거니까 안정 애착이 되어야겠다.', '와! 안정 애착이다. 통과(?)야!'에서 '안정 애착이 아니면 안 돼.'이르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정 애착 유형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 반드시 피해야 할 유형으로 불안정 애착(회피&양가)이 자주 도마 위에 올랐고요.


자, 이제 우리의 예민함 뫼십니다. 남들보다 예민한 사람의 애착 유형은 어떨까요. 한 번 추론해 볼게요. 어디까지나 가설이니까요. 자극에 대한 반응과 감각이 민감하고 여기에 상당히 동요되는 특성을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불편감을 느끼거나, 가까워지기를 원하면서도 버림받거나 사랑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혼재된 유형일 가능성이 조금 더 높겠지요. 저 역시 꾸준히 불안정(양가형) 애착 유형이 나오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하하하. 하지만 저는 배우자와 지내는 하루하루가 무척 만족스러워요. 물론 예민함&대상관계적 이슈가 혼재되어 있어 내면이 시끄럽긴 합니다만,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큰 힘을 얻는 편이에요. 참참. 저희는 둘 다 각자의 까다로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로를 감당해 내는 부분이 물론 존재하고요. 힐난하고 쥐 뜯는 순간도 역시 있습니다(주로 제 쪽에서..). 그럼에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구질구질한 면을(일부) 받아들이고, 내적 이슈의 프레임을 바탕으로 상대를 바라보기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 집중하는 거였어요.


이건 예민함에 대해 제가 주장하는 맥락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민함 때문에 (몹시, 매우, 무척) 힘들더라도 도려낼 수 없어요. 없는 듯, 아닌 척 살 수도 없습니다. 싫다고 해서 스킵해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예민함에 대한 저항감을 줄이면, '예민한 나'를 조금은 이해한다면, 예민한 채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지잖아요? 비록 불안정 애착이라서 자주 불안하고, 틈 없는 거리감에 답답할 수 있지만 서로의 방식으로 오늘 하루를, 내일을, 그다음 날을 함께 하는 선택을 하면 되는 일이에요. 선택의 주체는 우리 자신이고, 이처럼 능동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감각은 큰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즉 '불안정 애착이라 자주 불안할 수밖에 없어. 상대방이 나에게 맞춰줘야 해.' → '불안정 애착이지만 뭐 어때. 내가 어떨 때 덜 불안하지? 불안감을 키우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어떤 걸 요청할 수 있을까?'로 전환하는 겁니다.


게다가 감각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예민인의 특성상, 사랑하는 행위와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의 농도는 굉장히 진해요. 단 한 번으로 나와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뿌리째 흔드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게 되고, 그 사람이 웃을 때 함께 행복해질 때면 이번 생은 이걸로 충분하다 싶답니다. 이는 예민한 우리를 받쳐주는 단단한 토양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도 없고, 반드시 연애나 결혼의 형태가 아니어도 좋아요. 중요한 건 예민함이든 불안정 애착이든 각자의 방식대로 편안해질 수 있고, 예민하기에 사랑하는 일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니까요.



그러니 우리, 무언가를 더 깊고 진하게 사랑할 수 있어요.

월요일 연재
이전 07화예민함이 축복은 아닙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