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한 마음
아무튼 예민함 시리즈를 쓰면서 깨달았다. 누군가를 계도하거나 고양하는 데 적성이 없구나. 예민함을 말하는 게 무거운 숙제가 될 수 있군. 물론 일하며 익힌 것들과 유용한 경험을 공유한 의의는 있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쓰는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흥이 나지 않았다. 이게 맞나? 당연한 소리를 당연하게 조잘대는 격이 아닐까? 혹자는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을 타인과 나눌 때 즐거움이 크다고 한다(세상에). 다른 누군가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라는 흡족함이 동기가 된다 하고(뭐라고?!). 나? 불행하게도 둘 다 해당되지 않았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오, 혼란스럽다. 모르겠을 땐 단순무식한 정공법이 최고다. 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톺아봐야 한다.
여기저기서 책을 쓰고 출판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책을 내는 것이 소소한 유행인 데다, 다른 기회의 발판이 되기도 하니 분명 유용한 점이 많겠지. 동종 분야 상담자들도 다수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담백하게 생각하면 세상을 향한 포트폴리오를 공개하는 거다. 더군다나 정년까지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 먹고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인 세상이다. 나 역시 전공을 통한 수익 창출, 경제적으로 안정되리라 하는 흑심에 책 쓰기를 고려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자본주의 시대에 생존하려면 당연한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멋쩍다. 다만 그냥 하면 되는 것들이 그냥 되지 않았다. 유/무형의 무언가를 '판다'는 것의 저항감일까? 아니다. 다르다. 생뚱맞게 희랍어시간(한강 作)의 문장과 연결된다.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가진 재주를 제공하고 그 비용을 받는 것은 괜찮다. 실제 부끄럽지 않은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할 자신은 있으며, 이미 프리랜서 상담사로 시장에 노출되어 있다. 다만 내면에 뿌리내린 말과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쓰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아직 책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물론 예민함에 대해서는 나름 버무려 표현할 수 있다. 선한 목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된 존재로 여기질 않길 바랐다. 예민한 사람들이 자기혐오가 유독 심하기도 하니, 예민한 그대로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건 필요한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저는 예민함을 잘 안답니다?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그러니 내 말을 들어 보세요-라는 골자의 글을 물성으로 빚어내 부피를 차지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다 떠나서, 날 따라 해봐요 요렇게! 와 안 맞다. 이게 안 되는 종자인걸 어쩌겠나. 당기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는 재간도 없다. 본성을 거스르는 짓은 하지 않겠다. 해서 이번엔 실험적 글쓰기이다. 나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의 흔적을 남기는 데 온전히 집중하는 방식으로 시도해보려 한다. 즉-지금의 저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고 그래서 요렇게 저렇게 해보려 해요-인 것이다. 나쁘지 않다. 쓰는 데도 재미있었다. 상담이 직업인 한 인간의 자아 탐색이자 요란한 마음을 살피는 것이며, 우당탕탕에서 자기 이해의 꽃을 피워보려는 고군분투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직업에 대한, 피어오르는 의구심을 열렬히 파고들어 볼 테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응답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나의 어떤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이후에 무엇을 이어나갈지, 변화할지에 대한 판단도 내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온전히 나에게 쓰는 시간과 체험은 귀한 것이니 휘발되지 않게 기록하는 것도 겸해서 말이다.
이런 상담자도 있구나 하며 가볍게, 희한하게 봐주셔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