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에 소재한 Humanity House에서 난민체험을 하다
엄마가 너희들만할 때 읽었던 책이 있었어. 난생처음 책 읽으며 울었던 책이야.
김내성 씨의 '쌍무지개 뜨는 언덕'
그런데 그런 감동으로 다가온 책이 또 있단다. 어른이 되어서 엄마가 되어서 읽은 책.
김중미 씨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625 전쟁 이후 난민처럼 살아갔던 이들이 괭이부리말 마을에서 삶과의 고투를 따뜻하게 이겨낸 이야기란다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또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있지. 바로 6월 25일. 이래저래 6월은 진지하게 보내야 하는 날이 많구나.
난민의 날과 호국보훈의 달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찾아갔던 곳이 있지. 첫째와 둘째 그리고 친한 언니랑 친구와 헤이그(Den Haag)에 있는 Humanity house에 갔다.
가기 전에 난민이 어떤 사람인지 물었을 때
이 난민 체험관에 가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너희들은 순진한 기대감으로 이런저런 대답을 한 기억이 난다.
얼추 맞는 대답을 한 너희들이 기특했단다.
난민 :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
: 일반적 의미는 생활이 곤궁한 궁민,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곤궁에 빠진 이재민을 말한다. 그러 나 최근에는 주로 인종적, 사상적 원인과 관련된 정치적 이유에 의한 집단적 망명자를 난민이 라 일컫고 있다 (출처-두산백과)
이 난민 체험관에서는(박물관의 정식 명칭은 Humanity House이다. 난민체험과 인권교육 및 토론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하 난민 체험관이라 칭한다) 모의 경험으로도 전쟁을 체험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상황을 설정하여 난민이 되는 가상체험을 하게 한다
고국을 탈출하고
은신하며 살아가고
난민등록을 하고
난민 여권(난센 여권)을 만드는 과정 체험과
실제 난민들이 겪었을 여러 가지 절차를 모의상황으로 만들어 체험하고 느끼도록 하고
때로는 영화도 상영하고 교육이나 토론도 하게 하는 박물관이다.
난민 인터뷰 때 너희들이 가장 무서워했었지? 실제로는 두려움의 순간이기도 하지.
팔레스타인 난민, 코소보 난민, 탈북난민, 네팔 난민, 최근에 가장 국가적 사회적 이슈가 된 시리아 난민에 이르기까지 난민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단지 인도주의적 입장으로만 원만하게 해결될 수 없는 국가적인 문제다.
난민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저 그들의 아픔에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반응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더 좋겠지.
엄마의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엄마는 기아, 난민, 장애인들에 관심이 많았어. 처음엔 그저 단순한 관심, 그들이 불쌍하다, 이 정도였단다
그래서 언젠가는 아프리카에 가서 그들을 돕고 싶다는 풋풋한 소망이 있었지. 그러다가 아프리카 우간다에 갈 기회를 만들었단다. 그곳에서 내전으로 인해 굶주림의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보았단다.
그들을 도우러 간 것이 아니라 엄마가 배우고 왔었지
그곳에서 보낸 두 주간의 시간 이후 필요 이상 비싼 음식 사 먹지 않고
과한 소비는 자제하고 물과 전기에너지를 아끼는 삶을 살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단다
지금도 너희들에게 어지간한 거리는 차 타지 않고 걷게 하는 것도 단순히 교통비를 절감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담은 실천이란다.
그렇게 아껴진 물질을 필요한 이들과 나누는 삶이 의미 있고 값지다는 것을 언젠가 너희들은 깨닫고 실천하리라는 부푼 기대감으로.
그들도 꿈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우리의 작은 관심과 물질을 나눌 때 그들은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네 딸들아
세상은 순수한 관심으로만 변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은 순수하고 뜨겁되 문제 해결은 냉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하지만 시작은 나부터 그리고 소소한 일부터 이루어져야 한단다.
열 달 동안 뱃속에 품다가 너희들을 만나는 순간, 너희들을 만난 기쁨과 감격도 컸지만 마음 한 구석에 엄마는 쓰라린 아픔을 느꼈었단다.
- 시리아 난민 아기 쿠르디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일어났었다 -
이렇게 부모의 축복과 환영을 받지 못하고 슬픈 환경에서 태어나는 수많은 이름 모를 아이들이 떠올라서...
그들이 불쌍했단다.
전쟁통에 태어나는 아이들, 지진현장에서 발견되는 신생아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이들, 태어나도 아무도 축복해주지 않는 아이들.
신기하지? 왜 너희를 낳을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마음 한 구석에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는 것 같다.
- 난민체험 코너 이동 중, 좁거나 어둡거나 방향을 알기 어려운 공간들이다 -
우리가 함께 경험한 이 난민 체험관에서 너희들이 일시적으로나마 느꼈던 난민의 정체성과 대리 감정들은
어설프지만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고충을 공감하는 작은 출구가 되었을 거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반응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이 시대엔 똑똑한 사람도 많고 잘난 사람도 많고 앞서가는 지식과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 같아.
너희들도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런데 거기에 한 가지 더!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 되길 소망해.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그런 사람.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으로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하루하루 어린아이다운 웃음으로 바꾸며
버티고 살아가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애정을 가지고 함께 살았던 영호 삼촌처럼!
그들을 도와주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간
김명희 선생님처럼!
그렇다면 적어도 철학자 강신주 씨가 말한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지 못하는 양아치의 삶을 살지는 않겠지?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을 모르는 죄를 범하지 않고 살아가겠지.
이런 최소한의 삶이 최대한의 삶으로 쑥쑥 커지는 세상이 오길 오늘도 너희들과 함께 꿈꾼다.
박물관 이외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