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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딸랜드 Nov 17. 2019

위로를 말로 하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딸내미가 오들오들 떨고 있다.

멀리서 말 한마디 툭 던진다.

괜히 옷 놔두고 떨지 말고 두터운 옷 더 껴입어.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는 아이의 표정은 신통치 않아 보인다.


딸내미가 목욕하고 난 후 한기가 느껴지는지 몸을 웅크리고 있다.

샤워가운을 덮어주면서 꼭 안아 주니까 별로 안 춥다고 큰소리친다.


시아버님께서 멎적어하시면서 말씀하신다. 

장례를 치르고 교회 나오신 다른 장로님에게 특별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살짝 안아 주면서 어깨 툭툭 쳐주었다고 하셨다. 그랬더니 그분이 쓰윽 웃으셨다고. 


공감지수도 낮고 위로도 잘 못한다고 가끔 내가 남편을 구박한다. 그런 남편이 내가 힘들고 힘들어서 힘들어버린 여러 속이야기를 퍼붓고 울어버리니 안아준다.

그동안 구박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폐아들이다. 능력이 좋은 아이부터 능력이 부족한 아이까지 다양하다.

뭘 모르는 것 같아도 자기가 이쁨 받는지 아닌지는 다 안다. 매번 실수하고 잘하는 것이 없다가 어쩌다 하나 잘할 때마다 박수 쳐주고 파이팅 외쳐주며 손바닥 치기를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해죽거리며 웃는다.

아이들이 뭔가 잘할 때마다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는 그 순간에 어김없이 해주는 행동이 있다. 최고라는 의미로 엄지 척을 해주고 그 아이도 따라 하면 엄지손가락끼리 손도장 찍는다. 

그게 뭐라고 아이들은 참 좋아한다. 


이 십 년 전에 국제 기아봉사단으로 아프리카 우간다에 갔었다. 난 다큐멘터리 찍는 줄 알았다.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불쌍한 아이 선발 대회에 나온 애들 같았다. 눈에는 눈곱과 고름이 엉겨 붙어 있었고 손은 흙이 묻어 있었다. 더운 지방이라 다행이지, 누더기를 입어도 빈티지 옷이라고 우기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복장처럼 보였다. 아프리카 말을 내가 어찌 알겠냐만은 먹을 것을 주면서 먹으라고 하고 같이 손잡고 게임도 하고 춤도 추니까 쉽게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에 관심 가지고 따라와 주었다.  그제야 아이들 눈에 붙은 눈곱과 고름도 닦아 주었고 더러운 손도 닦아 줄 수 있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외진 곳에 사는 사람일수록 빈곤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외부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경계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는 경우가 많기에 그들을 배려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한 것 같다. 


집단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재난 현장에 선한 의도를 가지고 몰려오는 자원봉사자들이 많다. 지진 피해로 태풍 피해로 또 국가적 재난이었던 세월호 참사 사건에서도 역시나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돕고자 맨 몸으로 달려왔다. 여기에는 재난전문가와 심리치유 관련 전문가들도 대거 모여든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에서 저자는 자신의 자격증이 무용지물이 아닐까라고 말할 정도로 재난 현장에서의 위로는 녹록지 않은 어려운 과제다. 그런데 정작 자격증이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울면서 '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닥치는 대로 마구잡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실질적인 행동에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위로와 공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들은 피해자들을 위해 음식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도 하고 자신들의 무기력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고 호소하면서 유가족들 손을 잡고 함께 오열했다고 한다. 그러한 자원봉사자들의 태도와 마음에서 피해자들은 혼자라는 느낌을 받지 않고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말이 힘들 때는 몸으로 때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열 번의 잔소리보다 한 번의 포옹이 아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처럼. 


아픔에 처한 사람을 돕겠다고 기껏 심사숙고해서 외치는 말들이 실상 칼이 되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혜신은 그러한 말들은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성격을 가지고 상대방의 마음을 난도질한다고 주의를 준다. 

끼니를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영혼 없는 위로처럼 ' 밥 잘 챙겨 먹고 다녀'라는 덕담보다 직접 손잡고 끌고 가서 밥 한 끼 사 먹이는 것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준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이 힘들 때면 온통 신경 돌기가 꼿꼿하게 서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는 민감하게 반응을 감지하는 손을 사용하여 살아있는 손길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백번 낫다.  



피부는 신체에서 가장 넓은 감각기관이며 피부에 가장 밀접하게 관계하는 기관이다. 배아 시기부터 발달하는 촉각은 인간에게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이다.  어느 누구든 태동을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엄마 또는 아빠가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톡톡 신호를 보내면 아이도 함께 움직여서 반응하는. 태초의 지식이라고 불리는 접촉, 촉각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기제가 되는 것이다. 


촉각이 고루 분포되어 있는 피부의 힘을 믿어보자. 피부에게 말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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