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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딸랜드 Nov 17. 2019

왜 자꾸 날카로운 첫 키스의 기억에 머물게 될까?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질 쳐서 사라졌습니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시를 달달 외우고 지냈었지. 사실 대입을 앞두고 줄줄 외운 시가 한 두 편이 아니지만 기계적으로 외우지 않고 마음 깊이 외운 시는 지금도 그 감흥이 남아 있다.


스스로 표현하기에 낯간지러운 표현이지만 소위 말하는 문학소녀의 모습을 일부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또 모르고 싶어 했던 중학시절과 여고시절에 혼자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해 꿈을 꾸기도 했다. 뭔가 고상하고 순수한 사랑처럼 보이는 플라토닉 사랑만이 참사랑이라고 알던 순진한 시절이다.


그러한 내가 일생일대의 큰 경험을 하게 되었다.

꽤나 오랫동안 애인 없이 지내면서 깨끗하고 순결한 나 자신을 지켜왔다는 나름대로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버텨왔던 내가 말이다.  


이러저러한 수많은 사건과 사연을 거쳐서 남자 친구이라고 불리는 애인이 생겼다. 뭐 애인을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밤새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보고 맛난 것 함께 먹고 적당한 두근거림과 설렘을 느끼는 것만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차츰차츰 알아가는 연애의 숙맥이었기에 그저 신기하고도 신비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남들 경험하는 그 모든 연애의 과정과 시행착오는 거쳐야 했었나 보다.

중간에 헤어짐을 경험했다(다행히 다시 돌아와 남편이 되었다).

죽을 맛이었다. 숨은 쉬고 있는데 살아있다고 못 느꼈다.

그런데 마음과 생각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작동하는 고장 난 시계 같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많이 하는지.

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데 마음은 왜 이리 소용돌이치는지 모를 정도다.


지고지순한 사랑만이 아름답다고 한 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게도 헤어진 애인과의 입맞춤이 그렇게 생각날 수가 없었다.

그때의 그 감촉을 애써 느끼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내가 신기했을 뿐이다.

입맞춤이 처음이라 강렬했던 것이었을까?

많은 추억과 주고받았던 말들도 있었는데 - 물론 그런 기억도 다 생각나는 것은 당연했다- 돌아서면 나도 모르게 머물고 있는 과거의 한 순간은 종종 입맞춤이 이루어지는 그때 그 시간이었다.


영화 방자전에는 방자가 춘향을 마음에 두고 마노인에게 연애에 관하여 개인교수를 받는 장면이 상당수 나온다. 가장 먼저 적용한 것은 '툭 기술'이다. 방자는 향단에게 그 기술을 시도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상대 여성 즉 향단의 아랫도리를 툭하고 잡아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방심시키는 기술을 쓴다. 손쉽게 춘향과 몽룡의 첫 만남을 이루어낸다.  이때 향단은 기습적으로 당하여 당황해했으나 싫지 않은 표정과 흥분했던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향단은 그 이후에도 그 짜릿한 기억을 품고 내심 그다음에도 같은 자극을 은근히 바래는듯한 뉘앙스를 보인다.


인간의 피부는 촉각을 느끼는 직접적인 통로다. 그중 가장 섬세하고 여리다는 곳이 손과 입술이라고 한다. 피하지방이 적고 피부가 긴장하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촉각을 감지하는데 특별히 결과적으로 성적인 흥분과 만족을 주는 곳이 성감대이기에 성감대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을 확인하고 느끼는 비밀통로이자 은밀하고 내밀한 둘만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하니 날카로운 첫 키스의 기억이 어찌 강렬하지 않겠는가? 그 당시 나에게 가장 강력했던 성감대가 입술과 혀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 안 것이지. 애절한 그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말보다 더한 강렬함은 혀끝에 놓여 있었던 것을!

님의 침묵은 그렇게 내게 각인된 잔인하게 아름답고 슬픈 시였다. 저항시로 다시 품기 전까지는.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다만 내 안의 무언가 항아리처럼 파삭 깨졌을 뿐이다.

어떤 것은 떠나도 완전히 떠나게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가 떠나자 내가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미각이 아니라 서로 만지고 쓰다듬고 더듬고 핥던 촉각이다.

시각, 미각과는 다르게 촉각의 상실은 소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상실의 느낌은 그것이 그동안 나에게 얼마나 활기와 생기를 주었는가 생생히 깨닫게 했으며 되찾아오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 조경란 「혀」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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