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대수야?
다 그냥 지지고 볶고 사는 거야
어릴 적에는 이런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안 그래도 집에서 티격태격하며 지내는 것이 못마땅했던 시절의 진솔한 푸념이다.
동생들과 먹을 것 가지고 치사하게 싸우는 것,
누구든 내 물건 함부로 만지는 것이 싫었던 것 - 그러면서도 내가 가족들의 물건 만질 때 당당하게 굴었던 이중성을 뒤늦게 반성하고 있지만-.
좁은 집구석에서 오며 가며 어깨 부딪히고 사는 것이 그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멋지고 근사한 집에서 가족들이 교양 있게 차 마시고 여유롭게 담소 나누는 장면과 우리 집에서 펼쳐지는 가정의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내가 들어가 살고 있는 부대낌의 공간은 TV 속에 연출된 공간과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최인호의 걸작인 '바보들의 행진'을 읽은 것도 같고 안 읽은 것도 같다. 워낙 자주 접하면 가끔 정확한 현실이 무엇인지 모른다. 특히나 명작이나 고전의 경우는 더하다.
그 소설은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이라는 영화로 재탄생되었고, 김수철이 부르는 영화 주제가는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다.
로드무비의 장점을 잘 살려낸 수작이라고 평가되는 그 영화에는 이따금씩 주인공 병태와 춘자의 살가운 장면들이 나온다. 멜로 영화에서 남녀의 애정신과 베드신이 특별장치로 삽입되듯이 이 영화에서도 풋풋하고 어설퍼 보이는 소박한 애정씬이 나온다. 터널을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부둥켜안는 그러한 장면들 말이다.
너무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냉동고 안에서였는지 눈밭이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민우, 병태, 춘자 모두 꽁꽁 얼어붙은 장면이 나온다. 몸이 얼어있으니까 몸을 녹이기 위해 민우는 병태와 춘자가 서로 껴안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얼어붙은 몸을 서로의 체온으로 녹이고 있었다. 민우의 각별한 배려에 힘입어. 자신은 혼자 거적때기 같은 겉옷을 움켜잡고 덜덜 떨면서도.
병태와 춘자 그리고 함께 한 공간에 있었던 민우까지 그들은 모두 서로를 사랑했고 사랑해간다.
두고두고 떠오르는 장면이다.
판타지를 어느 정도 담아내는 영화에서 판타지를 가장 잘 실현하면서도 지극한 현실을 잘 표현해 낸 명장면이다.
포옹, 서로의 살을 맞닿는 것만큼 실제적인 부대낌이 어디 있을까?
삶은 그렇게 살가움을 끼고 살아야 살아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나 보다.
아가가 엄마 뱃속에서 꽁꽁 싸매 여진 상태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확 펼쳐진 자궁 밖의 세상으로 나왔을 때 분리의 두려움은 이내 엄마의 포옹으로 감싸인다.
아무 감각도 발달되어 있지 않은 태아가 자궁에서부터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촉각은 이내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마의 품이라는 또 다른 따뜻함을 느끼는 감각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감미로운 목소리, 애정이 담긴 시선만으로 직접 체험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서로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촉각이 절대 필요하다.
반드시 타자가 있어야 하며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적 현상이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토록 싫었던 부대낌은 내 생존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이었다. 사랑이 움트게 되고 사랑이 견고하게 자리 잡게 하고 사랑이 도망가지 못하게 만드는. 매 순간 촉을 세우며 살아가야 제대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임을 배워가고 몸으로 익혀가고 있다.
종종 어릴 적 낑낑대며 지지고 볶고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지금도 그런 시절을 살아낸다.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