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북 마운틴 도서관은 쉼터이자 책놀이터이다
고대 이집트의 테베에 있는 도서관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고 해.
영혼의 시약소
영혼의 진료소
영혼의 요양소
영혼을 위한 약방
기원전 1300년경 이집트의 왕 람세스 2세는 자신의 궁전에 있는 도서관 앞에 그렇게 팻말을 붙여놓았다고 그런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니? 왜 도서관에 영혼이란 글이 붙어있을까? 왜 치료, 치유의 의미를 도서관에 부여했을까?
오늘 너희들과 함께 로테르담(Rotterdam) 남단의 스파이큰니스(Spijkenisse) 라는 작고 조용한 마을에 새로운 명소가 된 도서관을 찾아갔지. 원래는 도시락 싸들고 아침 일찍 가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놀고 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출발이 늦어지고 가는 길이 멀어서 예상보다 짧은 시간을 보내고 와서 너희들이 아주 아쉬워하며 다음에 또 오자고 거듭 다짐을 하던 기억이 나는구나.
고즈넉한 분위기의 중세 빛 마을 속에 자리 잡은 휘황찬란한 유리 피라미드는 이 동네 문화의 메카로 자리매김되어가는 것 같더라. 처음 이 도서관 건물을 본 느낌은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그리고 이 나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마구간, 외양간 같은 삼각지붕의 거대 유리창을 가진 집.
실제로 안이 밖이고 밖이 안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이 건물은 네덜란드의 유명 디자인 그룹 MVRDV에서 설계한 야심 찬 작품이란다. 안의 모습을 그대로 다 드러내는 유리벽,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책더미, 이런 개념들로 만들어간 북 마운틴 (boekenberg -네덜란드어로 '책더미' 즉 책으로 쌓은 산; book mountain)이란다. 건물은 총 5층 정도의 높이이고 안으로 들어서면 한 층 한 층 특색 있게 분류된 책들이 책장에 전시되어 있다.
너희들이 흥분하며 좋아한 어린이 책 코너.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보이는 아래층 전망과 위층의 마을 전망. 꼭대기층에 있는 카페에는 디자인이 멋진 안락의자가 있었고, 각종 잡지들이 꽂혀있었고, 창 밖을 보면 교회를 비롯한 주변 건물과 돌바닥 길. 이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이들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여유롭게 책을 읽는 모습 말이다. 핑계 같지만 너희들을 만난 이후 낑낑대고 부대끼며 살아오면서 도서관은 찾아가기 힘든 아득한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단다. 오다가다 멋진 이 곳에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감상하고, 마을 사람들이 그린 그림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차도 마시면서 보내는 일상이 요원한 꿈처럼 보이는 것이 미련한 착각이었으면 좋겠구나.
절로 영혼의 쉼터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대하다 보면 가슴에 멍울졌던 푸른 기억도 사라질 것 같다. 읽지 못한 새로운 책들 앞에서 자신의 지적 공허함을 깨닫고 겸손하게 책을 꺼내보는 연습도 할 수 있겠다. 찌든 삶을 무겁게 어깨에 메고 들어온 피곤한 이들은 유아용 책 코너에서 도담도담 즐거이 책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기발랄한 순진무구함의 약을 처방받는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것 같은 꿈의 도서관이다.
사랑하는 네 딸들아
한 국가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고, 현재를 보려면 시장에 가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보라
때로 도서관 대신 학교라는 말로 대치되어 오랜 세월 동안 식상하리만치 회자된 문장들이다.
엄마가 너희들과 함께 박물관, 시장, 도서관에 다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 마. 도.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관통하는 어떠한 흐름을 파악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는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통찰이 아니다. 사색하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향한
세상을 향한 사랑이 밑거름으로 자리 잡아야 제대로 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너희들 자신 스스로를 값진 존재로 여기고 건강하게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엄마가 도와줄게. 엄마도 도서관에서 먼저 영혼의 처방을 받은 사람이기에 언제 어떤 처방을 받아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 미리 예방을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단다. 물론 엄마와 너희들 개개인은 또 다르지. 스스로 영혼의 쉼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너희들 옆에 있어줄게. 친절한 사서로!